[일간스포츠 서지영]
"아빠~! TV 나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토끼 같은 자식들이 달려든다. 아빠는 '이 맛'에 산다.
박진만(36·SK)은 문학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PO)가 끝나면 '총알 귀가'를 했다. 오후 9시30분쯤 경기를 마치면 샤워 후 곧장 집으로 향했다. PO 1차전이 열렸던 지난 16일에는 딱 1시간 만인 밤 10시30분에 집에 도착했다. 그는 "평소 원정경기를 많이 다녀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모자라다. 홈 경기가 있는 날에는 가능한 한 일찍 집에 온다"고 말했다.
박진만과의 통화 중 수화기 너머로 꼬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지후(5)와 건우(1)군이었다. 박진만은 "아들 둘이 할 말이 많은가보다. 집에 들어오니 나란히 달려와서 매달린다"며 "맏이인 지후는 경기 중계를 보고 아빠를 알아본다. '아빠, 아까 TV에서 봤다. SK가 이겼다'고 만세를 한다. 정규시즌에도 TV에 자주 나와야 하는데…"라며 웃었다.
아빠는 멋졌다. 이번 PO에서 결정적인 호수비를 여러 번 보여줬다. PO 1차전에서는 양팀이 1-1로 맞서던 6회초 1사 1·3루에서 박준서의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빠져나가는 날카로운 타구를 다이빙 캐치한 뒤 더블 플레이로 연결했다. SK는 박진만의 노련한 수비로 역전 위기에서 벗어났다. 20일 열린 4차전에서는 1-0으로 앞선 5회 말 1사 후 문규현의 안타성 땅볼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다. 2-0으로 앞선 8회말에도 무사 1루에서 대타 조성환의 잘 맞은 타구를 직선타로 잡아내 병살로 연결했다. 위기를 극복한 SK는 2-1로 승리했다.
박진만은 올 시즌 부진했다. 57경기에 나서 타율 0.210, 29안타 19타점만 올렸다. SK의 유격수 자리는 줄곧 후배 최윤석의 몫이었다. 그는 "개인 최악의 성적이었다.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했다. 방망이도 아쉬웠다. 이번 포스트시즌(PS)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만수 SK 감독이 PO 엔트리 명단 확정을 앞두고 박진만을 불렀다. 그는 "감독님께서 '큰 경기에서는 베테랑의 노련한 수비가 필요하다. 도와 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PS 경험이 많다. 유격수 수비는 아직도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했다. 박진만은 이번 가을 PS 최다 출장 기록(97경기·21일 현재)을 매일 경신하고 있다.
박진만은 "PS를 앞두고 어느 캠프 못지 않은 강도로 훈련했다. 이번 가을에 진짜 박진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PS 같은 단기전은 각 팀 '에이스'가 등판한다. 큰 점수가 아니라, 실책 하나로 승부가 뒤집힐 수 있다. 평소보다 집중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SK는 정규시즌 동안 3주에 1번씩 집중적으로 수비훈련을 해왔다. 정경배 SK 수비 코치는 "번트 시프트나 내야 강습타구를 가정해 포메이션 훈련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아들에게 아빠의 '전성기'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싶다. 박진만은 "야구선수는 아기들을 돌보지 못한다. 아들이 TV를 통해서라도 아빠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며 "나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내 장점은 편안하고 안정된 수비다. 유격수 박진만의 명성을 되찾아 내년 정규시즌에는 주전 자리를 되찾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