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박진만.한 경기가 끝나기까지 보통은 300개 안팎의 공이 투수와 포수 사이를 오간다.
300구라면 300구 모두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멀리 달아나는 듯한 공에도 결국은 다음 공을 위한 배터리의 의도가 담긴다. 가끔은 그 중에서도, 단 하나의 공으로 전체 승부가 갈린다.
지난 27일 토요일 밤, SK-한화가 맞붙은 문학구장에서는 양팀 합쳐 마지막 공인 309구째에 이날 승부의 거의 전부가 실렸다.
6-6이던 9회말 2사 1루, SK 6번 박진만은 한화 투수 권혁의 3구째를 받아쳐 좌중월 끝내기 투런홈런을 터뜨렸다.
1976년 11월생으로 베테랑 중 베테랑인 박진만은 앞서 50경기에 출전했지만, 홈런이 1개뿐이었다. 부상 등으로 19경기밖에 뛰지 못한 지난해는 아예 홈런이 없던 터라 큰 것 한방을 기대기하기는 어려웠다.
박진만은 오직 직구만 노리고 타석에 들어갔다. “권혁 직구가 워낙 좋았다. 우리 타자들이 대부분 권혁 직구에 타이밍이 늦었다. 나도 앞선 타석에서 직구에 타이밍이 늦었다. 배터리는 직구로 승부를 들어올 것으로 봤다”고 했다.
볼카운트 1-1, 3구째 직구가 들어왔다. 코스는 거의 한복판. 시속 144㎞에 볼끝에 힘도 있었지만, 박진만은 벼락 같이 받아쳐 120m짜리 홈런으로 연결했다. 빠른 공을 보고 들어간 박진만은 타석에서 한박자 빨리 타이밍을 잡았다고 했다. “직구가 온다고 보고 평소보다 빨리 방망이를 냈다. 맞는 순간, 홈런이라기보다는 잘 맞았다고 생각했다. 한화 외야수가 쫓아가는 것을 보고 ‘잡히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1루로 뛰었다”고 했다.
한화 벤치는 결정적 홈런으로 연결된 권혁의 빠른 공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권혁이 1루주자를 의식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2사 뒤 김강민이 볼넷으로 출루하고 대주자 나주환으로 바뀐 상황. 볼카운트 1-1이 되자 주자의 뛰려는 동작에 집중력을 잠시 놓쳤다는 진단이다. 도루 가능성이 있는 1루 주자를 의식하면서 빠른 공을 던졌는데 그게 한복판으로 몰리고 말았다는 아쉬움이었다. SK 1루주자 나주환의 움직임이 권혁의 실투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그 경기의 마지막 공은 다음날에 영향을 미쳤다. 전날 교체 멤버로 나온 박진만은 28일 6번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박진만은 그날 마흔살 동갑내기인 한화 권용관과 나란히 홈런을 친 것에 대해 “후배들에게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