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06년

허구연 해설위원, "WBC 4강 잊고 미래 준비하자"

사비성 2006. 3. 28. 13:21

허구연 해설위원, "WBC 4강 잊고 미래 준비하자"

 

"한국야구, 이제 멀리 내다봐야 할 때입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의 여운이 아직도 맴돌고 있다. 그러나 달콤함에 마냥 취해 있을 때는 아니다. 한국야구의 가능성을 확인한 게 이번 대회의 수확이라면 다음 대회에 대비한 '마스터플랜'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번 대회 2라운드서 한국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현장을 누볐던 허구연 MBC 해설위원을 만났다. 허위원은 "한국이 이번 대회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번에 드러난 취약점을 어떻게 보완할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위원은 타격, 마운드, 수비의 기술적인 보완점과 국제행정 등 4개 영역에 걸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을 꼽았다.

▶타자-히팅포인트 = 허위원은 "국내 타자들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것은 히팅포인트를 제대로 맞추기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홈런 5개를 기록한 이승엽의 경우 공을 최대한 몸쪽 가까이에 붙여 놓고 때렸기 때문에 장타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매 경기 안타를 기록한 이종범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허위원은 "중계화면을 자세히 보면 이승엽과 이종범이 거의 배꼽까지 볼을 붙여놓고 때리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타자들은 몸이 쏠리면서 히팅포인트가 앞에서 형성돼 범타나 헛스윙이 많았다는 것이다. 허위원은 "볼을 붙여놓고 때리는 기술은 쿠바 선수들이 단연 최고였다"며 "상대투수의 스타일이나 구질, 스피드에 관계없이 안정된 스윙으로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투수-컨디션 조절과 스트라이크존 적응 = 허위원은 "박찬호 서재응 등 해외파 투수들은 대회 개막에 맞춰 컨디션 조절을 무난히 끝냈다. 반면 국내파 투수들은 예년보다 이른 실전피칭에서 적응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허위원은 "선동열 투수코치가 일본 후쿠오카 합숙기간부터 '해외파 투수들 위주로 가야 될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컨디션 조절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문제는 스트라이크존이다. 허위원은 "이번 대회 스트라이크존은 폭이 좁고 상하로 긴 메이저리그 스타일이었다"며 "한국야구도 장기적으로 거기에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 1개가 승패를 좌우하는 국제대회에서 공 1~2개 정도의 스트라이크존 변동폭은 엄청난 차이를 갖는다. 국내 투수들이 성장하려면 스트라이크존이 국제규격에 맞게 업그레이드되는 게 우선이라는 분석이다.

▶수비-포스트 박진만은? = 이번 대회서 한국은 내,외야의 철벽수비를 바탕으로 무실책 행진을 이어갔다. 허위원은 "수비 안정의 핵심은 키스톤콤비이며 그중에서도 유격수 박진만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박진만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향후 과제는 박진만의 뒤를 이을 대형 유격수를 키워내는 것이다. 허위원은 "미국, 일본에 비해 선수층이 얇고 인프라도 열악하지만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는 것은 국가적인 과제"라며 "안정적인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한다면 4강 신화는 한국야구가 아닌 특정선수들이 거둔 성과에 머물 수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스템-이제는 정보전 = 허위원이 마지막으로 지적한 과제는 해외야구 정보망 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국제업무를 보다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허위원은 "단기전은 정보전이다. 상대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며 "1라운드 대만, 일본전과 2라운드 멕시코, 미국전은 세밀한 전력분석의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또 "앞으로는 메이저리그 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쿠바 등 경쟁국가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