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박진만이 두산 응원단에게 기량으로 화답하겠다는 의미심장한 각오를 밝혔다.
17일 잠실구장. 오후 3시가 넘어 3루쪽 덕아웃에 삼성 선수단이 도착했다. 거의 모든 취재진의 눈길이 한 선수에게 모였다. 바로 유격수 박진만.
박진만은 전날(16일) 1차전 7회말 수비 2사 2루에서 두산 고영민의 평범한 타구를 떨어뜨려 실책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명품 유격수'란 닉네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넥스트 플레이에 신경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바람에 2루주자 김현수가 3루를 돌아 홈까지 밟았다. 단 한번의 플레이에 실책 두 개가 기록되는 흔치 않은 경우였다.
박진만은 이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세상에, 한 번에 실책 두 개 나온 건 내 야구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쓴웃음을 지은 박진만은 "그 뒤 8회초 공격때 타석에 들어섰더니 1루쪽 두산 응원석에서 '박진만 파이팅'을 아주 연호하더라.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박진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장면은 17일 전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보도됐다. 박진만은 "아니, 내가 2006년 한국시리즈 MVP가 됐을 때도 사진이 작게 나오더니만, 이번엔 아예 신문 반이 내 사진이야"라는 조크를 던졌다. 이어 "참 정말, 어제 그 순간은 난생 처음이고 무슨 생각하고 살고 있는건가 싶어서 망신살이 뻗쳤다"며 웃었다.
박진만은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걔(김현수)도 아무 생각 없고, 나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결국 걔가 이긴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역시 그때 특별한 센스가 있어서 3루를 돌아 홈까지 뛴 건 아니라는 뜻. 2사였기 때문에 김현수는 어차피 평범한 타구가 1루에서 3아웃째로 이어질 것이란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홈까지 달린 게 아니겠느냐는 설명. 실제 김현수도 이날 "박진만 선배가 공을 놓친 걸 못봤다"고 시인했으니 박진만의 설명이 맞다. 단지 박진만이 자괴감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던 게 문제가 된 셈이다.
어쨌든 '국민 유격수'의 명성에 금이 간 것은 사실. 박진만은 "아마 다음 번에 타석에 나가면 두산 응원단이 또 나를 연호할 것 같다"며 "진짜 수비 실력을 두산 응원단에 보여드리겠다고 전해달라"며 의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