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하남직]
"그땐 그랬어요. '우승하는 게 어렵지 않네'라는 생각까지 했거든요."
정상에 서 봤기에, 2등의 설움이 더 뼈아프다. 박진만(36·SK)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할 때는 정말 쉬워 보였거든요. '박진만이 가는 곳에 우승이 따라온다'는 기사도 나왔다니까요"라고 유쾌한 기억을 떠올렸다. 현실인식. 한숨이 나왔다. "2년 동안 다른 팀에서 준우승만 한 것도 기록 아닐까요."
2003·2004년 현대에서, 2005년·2006년에는 삼성에서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차지했던 박진만은 2010년 삼성에서, 지난해 SK에서는 KS 패자가 됐다. 그는 "세 번 연속 준우승은 싫다. 3개팀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록을 쓰고 싶다"고 했다. 3개팀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는 박종호(LG·현대·삼성)와 심정수(두산·현대·삼성) 둘 뿐이다. 박진만은 그의 등번호(7번)을 가리키며 "7번째 우승 반지는 SK에서 받고 싶다"고 말했다.
SK 포스트시즌의 서막을 열다지난 16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PO) 1차전. 1-1로 맞선 6회초, 유격수 박진만은 3루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 2루수 정근우와 "풀카운트가 되면 런 앤드 히트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병살보다는 홈 승부를 노리자"는 사인을 주고받은 후였다. 롯데 박준서의 타구가 박진만의 오른쪽을 향했다. 박진만이 날렵하게 몸을 던졌다. 공은 땅에 닿기 전에 박진만의 글러브로 들어왔다. '안타'를 확신하고 뛰었던 1루주자 홍성흔마저 아웃. 이만수 SK 감독과 양승호 롯데 감독이 동시에 꼽은 이날 경기의 승부처였다. 박진만은 "나는 편안하게 수비하며 투수들을 안정시키고 싶은데, 이렇게 몸을 날려야 할 때가 오더라"며 웃었다.
명품 수비의 완성, 훈련대부분의 지도자가 박진만에게는 '자율권'을 부여한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내가 수비코치로 있을 때 진만이에게는 '쉬고 싶을 때 말하라'고 했다. 스프링캠프 기간 중 한두 번은 꼭 '코치님, 저 오늘은 쉬고 싶습니다'라고 하더라.(웃음) 그런데 쉬고 나면 훈련량을 더 늘린다. 이게 자기관리다"라고 전했다.
여유로운 웃음에, 느긋한 성격. 박진만이 '게으르다'는 오해를 사는 이유다. 해명할 때도 느긋하다. 박진만은 "그렇게 보인다면 할 수 없다"며 웃은 뒤 "내가 신인 때 훈련했던 걸 생각하면 억울하긴 하다. 1996년 1월, 전지훈련 때 매일 밤 김재박 감독님(당시 현대) 앞에서 펑고를 받았다. 삼성·SK에서도 야간훈련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안다. SK 3루수 최정은 "나도 박진만 선배가 SK로 오신 뒤 알게 됐다. 후배들에 비해 결코 훈련량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10번째 KS, 7번째 반지96년 인천고를 졸업하고 1차지명으로 현대에 입단할 때부터 박진만은 주전 유격수였다. 은퇴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 자리. 그러나 '국민 유격수'도 세대교체의 풍파에 휩싸였다. 2005년 프리에이전트(FA)로 삼성에 입단한 박진만은 2009년부터 주전에서 밀려났다. 2010년 시즌 종료 뒤, 박진만은 결단을 내렸다. 연봉 6억원을 보장하는 삼성에 방출을 요청했고, 연봉 2억5000만원·옵션 5000만원의 조건에 SK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해 SK에서 100경기를 뛰었지만 올해는 잔부상에 시달리며 57경기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어느 팀이건, 중요할 때는 박진만을 찾는다. 2009년과 2010년 삼성이 포스트시즌 때 박진만을 중용했고, 현재 SK도 그렇다. 박진만은 포스트시즌 최다 출장 기록(94경기·16일 현재)을 매일 경신하고 있다. 박진만은 "96년부터 지난해까지 9차례 KS에 나갔다. 올해 10번째 KS를 맞이할 것이다. 7번째 반지도 차지하고 싶다. 내 역할이 크지 않아도 된다. 우승할 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팀 전체가 스타, 팀 전체가 조연'일 때였더라. 지금 SK 분위기도 그렇다"고 했다.
하남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