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 2차전. 선발명단에서 제외된 SK 박진만(36)은 9회 2사 후 임훈의 타석에 대타로 들어섰다. 포스트시즌 100경기 출전까지 1경기만을 남겨놓고 있었던 박진만은 이날 이렇게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경기가 거의 끝난 상황에서 대타로 나서 100경기를 채운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릴만 했다.
2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박진만은 그저 웃기만 했다.
“팀이 졌는데 100경기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개인보다는 팀이 우선이죠. 상대가 잘한 것도 있지만, SK다운 야구를 하지 못했어요. 그 동안 무기력하게 졌으니 이제 기회가 한 번쯤은 올 겁니다. 그 기회를 반드시 잡겠습니다.”
박진만의 다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한국시리즈 3차전은 그야말로 박진만의, 박진만에 의한, 박진만을 위한 ‘박진만 쇼타임’이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경기 후 패인에 대해 딱 한마디를 했다. “박진만을 못 막아서 졌다”고.
박진만은 이날 3차전에서 솔로홈런 포함 4타수 3안타 1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SK는 박진만을 포함해 17안타를 터뜨린 타선을 앞세워 12-8로 역전승하고 2연패 후 1승을 만회했다.
2회 1사 1루에서 우전안타를 치고 나간 박진만은 팀이 3-6으로 뒤진 4회 선두타자로 나서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12년만에 포스트시즌에서 날린 홈런이었다. 박진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5-7로 뒤진 6회 다시 선두타자로 나서 ‘6득점’의 시발점이 되는 선제 2루타를 날렸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타자들 중 포스트시즌 100경기 출전은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버니 윌리엄스, 데이빗 저스티스, 매니 라미레스 5명 뿐이다.
박진만은 경기 후 “12년만의 포스트시즌 홈런인 줄은 경기 끝나고 말해줘서 알았다”며 웃었다. 그는 “100경기 출전, 그런 것은 의미를 두지 않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며 “1-6으로 끌려갈 때 야수들끼리 모여서 ‘SK다운 야구를 보여주자’고 얘기했는데, 거기서부터 타선이 폭발했다”고 밝혔다.
큰 경기 경험이 많지만, 박진만에게도 실책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는 “우리가 6점을 내줄 때도 그랬고, 6점을 뽑을 때도 실책이 항상 끼어 있었다”며 “한국시리즈에서는 대량 득점하기가 쉽지 않은데, 실책이 있다보니까 선수들이 위축돼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나 역시도 실책을 저지르면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심한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