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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28일 2012 프로야구 SK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리는 인천 문학구장. SK 박진만. 2012.10.28문학 | 박성일기자sungil@sportsseou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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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54경기 나갔는데 포스트시즌 100경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선발로 100경기에 나간 것도 아니고…"
SK 유격수 박진만은 지난 25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KS) 2차전 3-8로 뒤진 9회초 2사에서 임훈을 대신해 타석에 섰습니다. 포스트시즌 통산 최초 100경기 출장의 대기록이 달성되는 순간이었죠. 그러나 그는 삼성투수 차우찬을 상대로 좌익수 뜬공으로 아웃되며 이날 경기의 마지막 타자가 되었습니다. 팀은 그대로 지며 2연패를 당했고 야구장과 박진만의 가슴에도 조명이 꺼졌습니다. 경기 후 그는 "100경기, 크게 와닿지 않더라. 이겨야 기분이 나지, 지고 나면…"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100(百)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백'은 옛말로 '온'이라고 했습니다. 온통, 온갖, 온전히 등에서 알 수 있듯 전체이고 전부의 뜻을 가집니다. 그만큼 100이라는 숫자가 품고 있는 상징성은 큽니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프로선수에게 큰 경기에서의 100번째 출장 역시 그 의미가 남다르겠죠. 축구의 경우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장자는 FIFA 센추리 클럽(FIFA century club)에 들어가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올림픽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136경기 출장기록을 가지고 있는 등 총 8명의 센추리 클럽 멤버가 있습니다. 야구에서는 포스트시즌에서 박진만이 이참에 센추리 클럽을 개설한 셈이죠.
박진만의 포스트시즌 경기 출장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소속팀이 강했다는 뜻이고, 개인적으로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현대에서 4번, 삼성에서 2번의 챔피언 반지를 끼었고 지난해 SK로 이적해 7번째 반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등번호가 7번인 이유죠.
28일 문학 3차전을 앞두고 다시 만난 그는 "운도 많이 따랐기 때문에 100경기나 뛸 수 있었다. 팀을 옮겨도 우승을 하는 등 소속팀들이 모두 우승했다. 의미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속내를 살짝 밝히더군요.
이어 베테랑의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베테랑이라는 프라이드는 있다. 아무래도 많이 뛰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냉정하게 경기를 바라보는 시야가 생겼다. 베테랑, 베테랑하는데 왜 베테랑이 중요한지 보여주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왕 100경기 채운거 우승반지 하나 더 따겠다"며 그동안 숨겨놓았던 포부를 드러내더군요.
그가 조심스런 자세를 취한 건 올시즌 최악의 한 해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정규시즌에서 절반도 못나와 타율 0.210의 부진한 성적을 보였고 주전 유격수 자리는 후배 최윤석에게 넘어갔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던 국민 유격수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그러나 최다출장자답게 가을잔치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가 없는 SK 수비는 왠지 헐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그의 존재감에 따른 선입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28일 3차전에선 101번째 포스티시즌 경기를 자축하듯, 또 새로운 100경기로 가는 첫 걸음을 기념하듯 홈런도 터뜨렸습니다. 물은 섭씨 100도가 되어야 끓습니다. 100을 채운 박진만이 이제 막 끓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