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05년

“등번호는 나의 또다른 이름”

사비성 2005. 8. 16. 14:11
“등번호는 나의 또다른 이름”

스포츠 스타들의 등번호 열전

차범근은 11, 선동렬은 18, 박찬호는 61….
스포츠 스타들을 떠올릴 때 이름과 함께 연상되는 숫자들이 있다. 바로 선수들의 등번호다. 숫자에 불과하지만 선수들은 등번호를 중요시한다. 유난히 징크스가 많은 스포츠 선수들에게 있어 등번호는 부적과도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하는 등번호를 단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 이상의 성적을 거두기도 하고 원하는 등번호를 달지 못한 선수들은 부진에 빠지며 등번호 탓을 하기도 한다. 스포츠 스타들은 어떻게 지금의 등번호를 달게 되었을까. 그들이 등번호를 달게 된 사연을 알아보았다.

현재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유니폼에 달고 뛸 수 있는 등번호는 총 101개다. 규정상 00번을 포함해 0번부터 99번까지의 번호를 등번호로 쓸 수 있는 것. 선택할 수 있는 번호는 많지만 선수들은 저마다의 의미있는 숫자를 찾기 위해 묘안을 짜낸다. 그런만큼 선수들이 자기 고유의 등번호를 달게 된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물림형 등번호
선수들의 등번호 중에서 가장 영예로운 번호는 ‘부전자전’ 번호다. 스타플레이어였던 아버지의 등번호를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하는 것. 가장 대표적인 예가 차범근-차두리 부자의 11번이다. 사실 차범근 프로축구 수원 삼성 감독의 고려대 시절 등번호는 9번이었다. 그러다 차 감독은 우연찮게 11번을 달게 됐고, 이후 11번은 한국축구 최고 공격수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됐다.

차범근의 계보를 잇는 최고 공격수인 국가대표 11번은 현재 아들 차두리가 물려받았다. 차두리가 11번을 단 이유는 전성기 때의 아버지처럼 대표팀 간판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을 하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의 외모만 빼닮았을 뿐 실력은 못미친다’ 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포석도 깔려있다.

농구계에서도 대물림은 있다. 국가대표 포인트가드로 맹활약했던 프로농구 KT&G의 김동광 감독도 자신이 전성기 시절 달던 등번호 7번을 아들 김지훈에게 물려주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부자는 등번호는 물론 같은 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한솥밥을 먹고 있다.

해외에서도 대물림은 마찬가지다. 축구천재 디에고 마라도나도 아들 알만도 마라도나에게 자신의 10번을 달게 했다. 아버지가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이름을 이용해 등번호를 단 경우도 있다. 지금은 은퇴한 강속구 투수 박동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롯데시절 21번을 달았는데 돌아가신 부친의 이름(박두일)과 같은 숫자 21을 달았다. 아버지를 위해 멋진 피칭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부자지간은 아니지만 사제지간의 등번호 대물림도 있다. 주인공은 최고 유격수 계보를 잇고 있는 김재박-박진만이다. 프로야구 현대 김재박 감독은 선수시절 구단과 입단 협상을 벌이며 자신이 대표팀에서 달았던 등번호 7번을 입단조건의 하나로 제시할 정도로 등번호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토록 그가 애지중지하던 7번은 수비위치(유격수)도 같고, 호타준족의 야구 스타일도 비슷한 애재자 박진만이 물려받았다. 박진만은 7번을 단 후 골든글러브를 네 차례나 수상하며 김 감독의 계보를 이었다. 박진만은 올해 삼성으로 이적한 뒤에도 7번을 달고 있다.


종목별로 의미있는 등번호들 따로 있다
부전자전형만큼 의미있는 등번호들도 있다. 그것은 각 종목별로 간판선수를 지칭하는 번호들이다. 야구에서 에이스투수를 상징하는 등번호나 축구의 스트라이커, 농구의 골게터 등이 이에 해당된다. 먼저 야구에서 10번은 팀의 왼손 간판타자를 뜻한다. 재일동포 장훈씨의 영향 때문이다. 국내에선 1980년대 스타 장효조를 비롯해 현역인 삼성의 양준혁, 현대의 이숭용, 롯데 이대호 등이 10번을 달고 있다.

또, 미국 메이저리그 홈런왕 행크 애런과 레지 잭슨이 달던 44번은 슬러거를 뜻한다. 44번은 과거 두산에서 활약하던 우즈, 현대 시절의 심정수, LG 조인성, SK 조경환 등 ‘한 방’ 있는 선수들이 애용하고 있다. 투수들 가운데서는 18번의 선호도가 높다. 선동렬로 대표되는 18번은 에이스를 지칭하는 번호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삼성의 김진웅, SK 제춘모, LG 이동현 등 젊은 에이스들이 18번을 독차지하고 있다.

한편, 축구에서는 10번과 11번을 선호한다. ‘킬러’ 들의 번호이기 때문이다. 10번은 스트라이커, 11번은 팀 내 가장 빠른 선수에게 돌아가는 것이 관례다. 펠레, 마라도나, 오웬 등 팀을 이끌고 있는 선수들은 전부 10번이고 차범근, 호나우도, 델피에로, 오베르마스 등 빠른 선수들은 나란히 11번을 달고 있다. 또 지단, 피구, 라울, 배컴 등으로 대표되는 스타미드필더들의 등번호는 7번이다. 박지성도 PSV시절 7번을 달고 뛴 바 있다.

농구에서 10번은 3점 슈터, 11번은 팀의 간판선수를 뜻한다. 전자랜드 문경은, KCC 조성원, 오리온스 김병철, 모비스 우지원 등 3점 슈터들은 모두 10번을 달고 있다. 국내 최초의 농구선수 영구결번의 주인공인 전자슈터 고 김현준 선수의 현역 시절 등번호도 10번이었다. 한편 삼성의 서장훈, KCC의 이상민, LG 김영만 등 각 팀의 스타플레이어들은 모두 11번을 달고 있다.


의지 담아 번호결정 하기도
그렇다면 각 종목별 대표번호를 달지 못한 선수들은 어떤 이유로 몇 번을 선택했을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아이템’ 은 자신의 목표치나 의지를 번호에 담는 방법이다. 야구에서 요즘 잘 나가는 투수들이 선호하는 등번호는 55번이다. 55번을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각 팀의 주축투수들은 한결같이 55번을 달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는 기아의 김진우. 그는 시속 155㎞의 강속구를 던지겠다는 의지로 55번을 택했다. 공교롭게도 김진우는 지난 2003년 이승엽에게 아시아 최다홈런 타이기록인 시즌 55호 홈런을 맞아 더욱 그의 등번호 55번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LG 정재복은 전반기 5승, 후반기 5승을 다짐하며 55번을 선택했다. SK의 에이스 엄정욱도 개인적으로 존경한다는 선배 정민철의 등번호를 따라 55번을 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민철은 올 시즌부터 55번을 버리고 23번을 달고 있다. 일본에서 돌아온 정민철은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인 23번을 달고 새롭게 의지를 다졌다. 은퇴후 다시 컴백해 신화를 일군 조던처럼 자신도 23번으로 다시 한 번 출발하고 싶은 의지를 담은 것. 정민철의 팀동료인 ‘풍운아’ 조성민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담아 99번을 등번호로 결정했다. 현재 선수들이 달 수 있는 번호 중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번호가 99번이기 때문이다.


번호에 담긴 사연도 다양
또 자신의 이름, 생일, 존경하는 선배의 번호 등 자신과 관련된 다양한 숫자들이 등번호로 이용되기도 하고 여의치 않은 경우는 원하는 숫자를 뒤집기도 한다. 61번으로 각인된 코리언특급 박찬호. 사실 그가 61번을 달게 된 것은 본인 의도는 아니었다. 그는 한양대 시절 16번을 달고 뛰었다. 특별한 의미 없이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달았던 번호라 계속 16번을 달고 있었던 것.

그러나 박찬호가 미국에 진출할 입단 당시 LA다저스 투수 코치인 론 페로나스키가 16번을 꿰차고 있었다. 한국에서 막 날아온 풋내기가 빅리그의 쟁쟁한 코치의 번호를 뺏기는 힘든 일. 그래서 그는 궁리 끝에 16번을 뒤집은 61번을 등번호로 정했다. 그러나 그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자 61번은 투수들의 선호 0순위가 됐다. 특히 중고등학교 유망주들은 앞다퉈 61번을 차지하려 할 정도로 이 번호는 유망주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름에서 등번호를 따오는 선수들도 있다. 은퇴한 전 프로야구 선수 오영일은 자신의 이름(501)대로 배번(51번)을 정했고, 공필성도 자신의 성을 따서 등번호가 0번이었다.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도 이름을 이용해 등번호를 결정했다. ‘달려라(Go) 이치로(Ichiro)’ 에서 앞부분만 따오면 ‘고이치’ 가 되는데 이는 51번의 일본어 발음이다.

존경하는 선수를 따라 등번호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과 같은 55번이다.왕정치 감독이 현역시절 세운 한 시즌 최다홈런기록(55개)을 넘어서겠다며 55번을 달았다. 이천수도 자신이 닮고 싶어하는 네덜란드의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의 등번호인 14번을 선호한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이천수는 14번을 고집했다. 이름만큼 자주 애용되는 소재는 생일. 11월 11일이 생일인 프로농구 KCC의 이상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11번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듯 등번호는 선수들에게 또 다른 이름이자 징크스의 상징, ID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특정번호에 대한 의미는 팀의 전통이 되기도 하고 원하는 등번호를 단 선수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선수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등번호. 앞으로 각 종목별 스타선수들의 등번호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경기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