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14년

국민유격수 박진만 '첫 바운드 타이밍에 수비 성패 갈린다'

사비성 2014. 1. 19. 15:42

국민유격수 박진만 '첫 바운드 타이밍에 수비 성패 갈린다'

 

 

[스포츠서울] ‘국민유격수’ 박진만은 빠른 발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를 처음 본 상대 감독으로부터 “매우 빠른 선수”라는 이미지를 갖게하는 유격수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국민유격수’ 박진만은 빠른 발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를 처음 본 상대 감독으로부터 “매우 빠른 선수”라는 이미지를 갖게하는 유격수다. 강영조기자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피터 개몬스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끝난 2006년 4월 5일 자신의 칼럼을 통해 “올 봄에 본 최고의 내야수? 한국팀의 유격수였다”고 밝혔다. 어떠한 부연설명 없이,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국가대표 유격수 박진만(38·SK)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박진만은 1회 WBC 당시 매 경기 상대 사령탑의 칭찬을 독차지 했다. 프로선수들만 참가하는 첫 국제대회에서 야구 불모지로 인식됐던 한국의 유격수가 모든 사령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점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고수의 비법’ 그 두번째 시간은 자타공인 최고의 유격수로 군림해 온 박진만의 수비 노하우다.

◇국민유격수? 칭찬 릴레이 속에 답이 있다

박진만은 ‘국민 유격수’다. 1996년 현대 창단 둥이로 입단해 데뷔시즌부터 주전유격수를 꿰찼다. 고교 때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그는 명 유격수 출신인 김재박 감독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박진만은 “훈련도 독하게 했지만 정신적인 면을 많이 강조하셨다. 느슨한 플레이를 한다 싶으면 포수장비를 착용한 뒤 백스톱 앞에 세워놓고 강한 펑고를 쳐주셨다. 수비는 자신감이다”라고 밝혔다. 박진만이라는 이름을 국제무대에 알린 가장 큰 계기였던 1회 WBC때로 돌아가보자. 당시 멕시코 대표팀 파킨 에스트라다 감독은 1-2로 석패한 뒤 “한국 유격수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매우 빨랐다. 항상 좋은 위치를 선점했고, 매번 빠져나갈 타구를 잡아냈다”고 극찬했다. 애스트라다 감독의 칭찬 속에 박진만이 왜 국민 유격수인지가 잘 드러난다. 프로통산 18시즌 동안 3루타 15개, 도루 94개에 불과한 박진만을 에스트라다 감독은 “매우 빠르다”고 평가했다. 항상 좋은 위치를 선점했기 때문에 ‘빠르다’고 느꼈던 것이다. 박진만은 “내야수비, 특히 유격수 수비의 핵심은 첫 바운드를 어떻게 잡느냐에서 갈린다”고 말했다.

[스포츠서울] 타구가 어떤 각도로 어느 지점에 떨어지는지를 보면 타구판단을 쉽게 할 수 있다. 3-유간은 물론 2루를 타고 흐르는 공을 2루수보다 먼저 잡을 수 있는 배경이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타구가 어떤 각도로 어느 지점에 떨어지는지를 보면 타구판단을 쉽게 할 수 있다. 3-유간은 물론 2루를 타고 흐르는 공을 2루수보다 먼저 잡을 수 있는 배경이다. 박진업기자

◇타구가 어디에 떨어지는지 보면 길이 보인다

박진만의 수비는 부드럽다. 다이빙캐치나 화려한 스텝보다 유려한 움직임으로 타구를 처리한다. 그는 “타고난 감각이 좋다는 칭찬을 많이 하시는데, 혹독한 훈련이 수반됐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다. 감독 코치들께 늘 고마움을 표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무조건 혹독하게만 하는 훈련은 노동에 가깝다. 하나의 훈련을 하더라도 무엇때문에 훈련을 하는지 알고 임해야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는 “어릴 때에는 동료들이 타격훈련 할 때 수비를 했다. 타격훈련과 내야 펑고를 동시에 할 때에도 코치가 쳐주는 펑고보다 동료들이 치는 타구에 더 집중했다. 펑고는 의도적인 타구이지만, 동료가 때린 공은 실전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흔히 ‘내야수는 공과 배트가 만나는 순간을 본다’고 한다. 공의 어느부위를 때리는지에 따라 타구의 강도와 방향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박진만은 이에 대해 “말도 안된다”며 웃었다. 아무리 동체시력이 뛰어나도 공과 배트가 만나는 순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배트를 떠난 공이 어느지점에 어떤 각도로 떨어지는지는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땅볼의 경우)어느지점에 어떤 각도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 큰발로 갈지 잔발로 갈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타구판단이라는 개념은 여기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타자와 가까운 곳에 떨어지는 타구는 공 윗부분을 때렸을 가능성이 높다. 크게 바운드돼 느려보이지만 회전력때문에 타구에 탄력이 붙는다. 소위 회전없이 날아오는 타구는 공의 중앙과 배트의 중심이 만났을 때다. 첫 눈에 타구가 빨라보이지만 무회전공이라 눈으로 보는 것보다 체감속도가 훨씬 느리다. 스텝을 죽이며 타구를 바라봐야 한다. 박진만이 ‘첫 바운드와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다.

[스포츠서울] 타구를 잡겠다는 의욕이 앞서면 공과 글러브가 부딪혀 험블할 가능성이 높다. 공이 가는 방향으로 흡수하듯 건져 올리는 게 내야수비의 포인트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타구를 잡겠다는 의욕이 앞서면 공과 글러브가 부딪혀 험블할 가능성이 높다. 공이 가는 방향으로 흡수하듯 건져 올리는 게 내야수비의 포인트다. 박진업기자

◇공을 잡으려하기 보다 건져 올려야

물론 배터리의 사인을 숙지하고, 경기 당일 투수와 상대 타자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도 기본이다. 투수의 볼끝이 좋다면 정위치보다 2루쪽에 한 두발 옮겨 수비위치를 잡는다거나 몸쪽 변화구 사인이 났을 때 오른쪽(3루쪽)으로 스타트할 준비를 하는 등의 노하우는 경험이 만들어준 산물이다. 그가 “투수의 제구가 좋으면 타구 방향을 예측하기 한결 수월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타구를 어떤 마음으로 처리하느냐다. 그는 “잡으려고 하면 부딪힌다”고 말했다. 자신을 향해 빠르게 굴러오는 타구를 억지로 잡으려다보면 바운드를 못맞추거나 중심이 무너져 공과 글러브가 부딪힌다는 것이다. 실책이 나올 확률이 높다. 타구가 가도록 내버려두고 발을 이용해 흡수한다는 느낌으로 건져 올려야 실책을 줄일 수 있다. 많은 코칭스태프가 내야수들에게 ‘바운드에 리듬을 타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진만은 “수비는 훈련한 만큼 돌아오게 돼 있다. 훈련을 통해 몸의 감각을 익히고, 타구가 날아오기 전에 모든 생각을 끝내야 한다. 그 이후에는 나에게 날아오는 공에만 집중하면 된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