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12년

40대 회춘 내야수, 박진만의 역사적 도전

사비성 2015. 4. 8. 13:20

40대 회춘 내야수, 박진만의 역사적 도전

[OSEN=김태우 기자] “나도 이제 내년이면 마흔이다. 여기서 한 번이라도 큰 부상을 당하기라도 하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한다.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다”

2014년 초, SK의 오키나와 전지훈련을 마무리할 때쯤 박진만(39, SK)은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말하는 동시에 자신의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나온 ‘부상’이라는 단어는 그만큼 절박함을 가지고 뛴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추임새 정도였다. 그런데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지난해 박진만을 덮쳤다. 2014년 4월 12일 대구 삼성전에서 수비 도중 오른 무릎을 다쳐 기나긴 재활에 들어가야 했다.

조심스레 이에 대해 묻자 박진만은 “(인터뷰가) 기억이 난다. 말이 씨가 됐다. 이래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라고 웃으면서 “부상 당시에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수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밀검사를 해보니 인대가 끊어졌더라”라고 떠올렸다.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는 박진만의 모습에서 당시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야수로서는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당한 부상. 거기에다 수비폭 및 스피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무릎이라는 부위. “스스로의 선택에 달린 문제지만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시즌 중 복귀하기는 했지만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고려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하지만 박진만은 고심 끝에 현역 연장을 선언했다. FA 자격도 포기하고 SK와 1년 계약을 맺고 ‘마지막’을 외쳤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간 한 것이 너무 아까워서였다. 

박진만은 “20년 넘게 현역생활을 하면서 마무리캠프 가 본 적이 2~3번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2013년 시즌이 끝나고는 마무리캠프부터 운동을 참 열심히 했다. 그런 상황에서 부상을 당했다. 포기하려고 생각하니 그 때 운동을 한 것이 너무 아까웠다”라고 떠올렸다. 1년 전 이야기한 것처럼 후회는 남지 않아야 했다. 결국 박진만은 다시 한 번 도전을 선택했다.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선택은 옳았다. 선수에게나, 팀에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1군 무대에서 통할 만한 기량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진만은 개막 후 팀의 7경기에 모두 선발 및 교체로 나갔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정상적으로 유격수 수비를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7경기에서 수비가 문제를 일으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때로는 3루도 보며 팀 내야에 안정감을 불어넣고 있다. 박진만의 부상을 틈타 주전 유격수가 된 김성현이 이제는 거꾸로 박진만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는 모습이다. 

몸 상태는 아주 좋다. 시범경기부터 지난해에 비해 장타가 늘어난 비결에 대해 박진만은 “특별히 다른 것은 없고 방망이를 좀 더 길게 잡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힘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캠프부터 철저한 몸 관리를 해오고 있다. 박진만은 “김용희 감독님께서 워낙 관리를 잘해주셨다. 그 덕이다”라고 공을 돌렸지만 박진만의 노련한 자기관리는 이미 캠프 때부터 평판이 자자했다. 얼굴에는 지난해 보기 힘들었던 미소가 보이고 있었다. 

올해로 만 39세의 박진만은 통산 20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가시권에 두고 있다. 프로야구 역사상 7명밖에 없는 대기록이다. 올 시즌 현재의 페이스라면 시즌 후반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 여기에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40대 내야수에도 도전하고 있다. 만 40세가 넘어 경기에 출장한 야수는 총 14명이 있었지만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 포지션은 박진만이 사실상 처음이다. 내년쯤이 되면, 박진만의 출장 한 경기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될 공산이 크다. 

“5년은 더 뛰어도 될 것 같다”라는 주위의 말에 박진만은 항상 “무슨 말이냐.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 농사나 지으면서 살 것”이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름값이 아닌 오로지 실력의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박진만이다. 지금의 그 가치가 이어진다면, 박진만의 귀농 시기는 원래 생각했던 시기보다 한참 뒤로 밀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