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06년

[손재언의 생뚱 인터뷰] (26) 삼성 박진만

사비성 2006. 3. 31. 21:39

[손재언의 생뚱 인터뷰] (26) 삼성 박진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3월 한달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을 기쁘게 했던 야구축제의 이름입니다. 아시아지역예선 통과도 힘들다던 당초 전망을 보기좋게 뒤집고 야구강국을 자처하던 일본과 미국을 차례로 연파하며 꿈의 4강에 올랐습니다. 이번 생뚱인터뷰는 그 주인공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특히 WBC 참가국 중 유일하게 무실책을 기록해 세계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30일 인천 SK-삼성전서 만난 그의 이야기를 같은 질문아래 한데 묶었습니다. 환상의 수비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대담형식으로 꾸며봤습니다.

< 거짓말 같았던 그 순간>

-국민적 스타가 되서 돌아왔다.

박진만 :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까 전화가 불이나게 오데요. 방송사와 신문사는 기본이고 친구들과 안면이 조금이라도 있는데서 전화가 오는데…. 아! 정말 스타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데요.

-아직도 명수비 장면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를 회상한다면.

박진만 : (농담식으로) 솔직히 그걸 어떡해 잡았나 싶어요. 대만전 9회말 2사 1, 3루에서 대만의 대타 천치야오가 친 볼이 투수옆을 지나는 순간 무조건 안타라고 생각했는데….

-당시에 둘다 몸을 날렸는데.

박진만 : 빠지면 동점 위기라는 생각에 무조건 몸을 날리긴 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죠. 순간 판단으로는 너무 멀었거든요. 다이빙을 하고 팔을 쭉 뻗었을 때만 해도 빠져서 안타가 된 줄 알았다니까요.

-잡는 순간 느낌이 왔나?

박진만 : 솔직히 눈으로 글러브 속에 공을 확인하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거에요. 넘어진 뒤에 반사적으로 글러브를 봤는데 하얀 뭔가가 보이더라고요. 그 때 잡았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공을 2루에 뿌렸죠.

-우연하게도 박찬호가 마운드에 있었을때 모두 호수비를 했는데.

박진만 : 대만전에서 마지막 타자를 잡고 내려오니까 찬호형이 그러더라고요. "야! 너 아니었으면 오늘밤 잠 한 숨도 못 잤을뻔했다"고. (웃으며) 그런데 선물은 없던데요?

< 30년요? 3년이면 되겠던데요. 메이저리거 그까이꺼>

-WBC 직전에 이치로가 '30년 발언'을 했다. 그 때 느낌은.

박진만 : 정말 열받데요. 야구를 우리보다 잘한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30년간 못따라갈 정도는 아니잖아요? 국가대표 경기에서 우리가 30년동안 못 이긴 것도 아니고….

-일본을 두번이나 이겼다. 한국야구와 비교한다면.

박진만 : 일본야구가 세밀하다고 자랑하지만 수비만 놓고 보면 우리나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었죠. 오히려 수비폭은 우리 선수들이 훨씬 넓다는 생각도 들고….

-미국전에서는 메이저리그 올스타들과 함께 섰는데. 긴장하지 않았나.

박진만 : 솔직히 경기전만 해도 TV로만 보던 선수들과 진짜로 같이 경기한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더라고요.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캔그리피 주니어…. 솔직히 이름만 들어도 설레잖아요. 근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까 그냥 선수더라고요.

-메이저리거들의 타구를 잡아보고 투수들의 공을 쳐보기도 했는데. 그 느낌은?

박진만 : 저 미국전에서 치퍼 존스 타구 잡다가 넘어진 것 봤죠? 파워가 굉장하더라니까요. 보통 타구같으면 쉽게 잡을 공이었는데 타구에 힘이 실리다보니 빠르고 바운드도 길었어요. 어찌나 세게 밀려들는지….. 역시 메이저리그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데요.

-유난히 어깨가 좋아 보인다.

박진만 : 중학교 때까지 투수를 한 것이 큰 도움이 됐죠. 한때 에이스였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유격수로 전향했는데 쉽지 않데요. 어깨가 좋은 것 빼고는 메리트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번 경기를 보면서 많은 팬들이 타고난 수비수라는 평가를 했다.

박진만 : 솔직히 프로에 들어와서 3년간 배트를 들어볼 시간이 없었다니까요. 하루 8시간 훈련을 수비연습에만 매달렸죠. 처음에는 정말 이런식으로 야구해야 되나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죠. 근데 하루는 김재박 감독님이 포수장비를 착용하라고 하시더니 직접 배트를 잡고 훈련을 시키는거에요. 시범경기 끝나고 관중들도 많았는데….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던지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였죠. 한 5분이나 지났나? 공을 정신없이 받다보니까 오기가 생기데요. 그리고 순간 감독님의 손바닥을 봤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피가 철철 흐르더라고요. 그 때 알았죠. 독하게하면 감독님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일본이나 메이저리그 진출 기회가 있다면.

박진만 :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저요? 아직까지 우리나라를 떠나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정말로. 이번에 좋은 인상을 남긴 것만으로 만족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