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04년

여우Ⅱ 박진만-코끼리Ⅱ 양준혁 '감독분신' 대리전

사비성 2004. 10. 21. 22:24
여우Ⅱ 박진만-코끼리Ⅱ 양준혁 '감독분신' 대리전
 

 
'김의 전쟁', 그 대리전이 시작됐다.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삼성 김응용 감독과 현대 김재박 감독. 라이벌 그룹간의 자존심을 걸었고, 최고 명장을 가리는 결전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한다. 감독은 그저 덕아웃에서 머리에 열을 내고, 속만 시커멓게 태울 수밖에 없다.

김응용 감독과 김재박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는 한결 편한 입장이다. 자신을 쏙 빼닮은 제자들이 그라운드를 휘젓고 있기 때문이다.

김응용 감독은 양준혁(35)을 '양신(梁神)'이라며 격을 높여 부른다. 양준혁이 2001년 갑작스럽게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갈 곳을 잃자, 김응용 감독이 그를 끌어안았다.

김응용 감독은 압도적인 덩치로 60년대 야구를 풍미한 거포였다. 냉혹한 승부사지만 그라운드에서 한발 물러서면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양준혁은 김응용 감독이 좋아할 만한 호쾌한 야구를 한다. 파워와 정교함을 겸비한, 감각적인 스윙을 타고났다.

특히 이승엽과 마해영이 없는 올시즌 삼성 타선의 중심을 꽉 잡았다. 과장된 몸동작과 구수한 입담도 김응용 감독에 지지 않는다.

게다가 양준혁은 올시즌 현대전에서 타율 3할9푼, 3홈런을 기록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키플레이어로 지목됐다.

김재박 감독은 96년 '입단동기'인 박진만을 분신처럼 생각한다. 수비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춘 고졸 신인에게 자신의 등번호(7번)를 물려줬을 정도. 김재박 감독은 혹독한 훈련으로 박진만을 국내 최고 유격수로 키워냈다.

김재박 감독은 시대를 앞서가는 유격수 수비로 상징되는 인물. 선수 시절부터 '여우'로 불렸을 만큼 두뇌회전도 빨랐다.

김재박 감독의 현역 시절처럼 박진만은 국내에서 가장 수준 높은 수비를 자랑한다. 김재박 감독처럼 타격 재질도 뛰어나 팀공헌도가 아주 높은 스타일이다. 심지어 세상 편하게 보이는 걸음걸이 마저 김재박 감독과 닮았다.

박진만 역시 올시즌 삼성전 타율 3할1푼7리, 4홈런으로 '사자 킬러'로 활약했다. 빅매치에서 그의 비중은 더욱 커졌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감독을 대신해 뛰는 양준혁과 박진만의 대결을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감상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