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함정 수비'라고 볼 수 있겠다.
두 달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삼성 박진만과 두산 김현수는 금메달을 합작한 주요 파트너였다. 명품 수비로 유명한 박진만은 내야를 굳건히 지켰고, 김현수는 일본과의 예선전 결승타를 포함해 좌타라인의 선봉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플레이오프에선 인연이 다른 방향으로 얽혔다.
박진만은 19일 3차전이 열리기 직전 기자에게 살며시 "나 독기 품었으니까"라고 말했다. 2차전에서 팔이 미치지 못할 게 뻔한 타구에 다이빙캐치까지 했던 이유를 묻자 나온 답변이었다. 박진만은 타구 판단이 빠르기 때문에 평소 불가능한 타구에 몸을 날리는 법이 없다. 괜한 부상만 키울 수 있기 때문.
"독기를 품었다"는 것은 지난 16일 1차전에서의 망신살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1차전에서 박진만은 7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고영민의 평범한 타구를 떨궈 실책을 했다.
넥스트 플레이를 못하고 자괴감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틈에 2루주자 김현수가 3루를 돌아 홈까지 밟는 바람에 망신살은 두 배가 됐다. 실은 3루를 돌다가 잠시 멈추는 동작을 하지 않았던 김현수도 본헤드플레이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박진만이 다 뒤집어썼다. 김현수의 '무심 주루'가 박진만을 더 창피하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이같은 1차전의 악몽 때문에 독기를 품었고, 2차전에선 다이빙캐치까지 하며 신중한 수비가 완벽했다. 박진만은 19일 "내가 1차전 때문에 얼마나 창피했는 지 알아요? 아주 망가졌어, 망가졌어"라며 웃었다.
그리고 3차전에선 박진만이 김현수를 아주 벼르고 별렀다는 듯 잡아버렸다. 8회 2사 만루 위기때 김현수가 친 타구는 정상적인 수비 위치였다면 무조건 2타점짜리 중견수 왼쪽 안타가 될 타구였다. 그런데 어느 틈에 타구 길목에 자리잡았던 박진만이 풀쩍 뛰어올라 쉽게 잡아버렸다. 두산의 마지막 추격 기회가 무산된 장면.
그에 앞서 박진만은 김현수가 타석에 서자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수비 시프트를 했다. 마지막 순간 박진만의 위치는 유격수 자리가 아니라 거의 2루수 뒤쪽까지 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이상했다. 결론적으로 이 시프트가 2타점 적시타를 범타로 둔갑시켰다. 벤치에서 따로 시프트 사인이 나온 게 아니었다. 김현수 타구가 중견수쪽으로 많이 향한다는 걸 알고 있는 박진만의 자의적인 자리 이동이었다.
박진만은 3회에도 2사 만루 때 김현수의 중전안타성 타구를 시프트 덕분에 잡아내 처리했다. '독을 품고' 감행한 두차례 시프트 성공이 이날 승부를 갈랐음은 물론이다.
플레이오프 승부는 여전히 긴 호흡이 남아있다. 김현수 타석 때마다 박진만이 슬금슬금 어떻게 움직이는 지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가 될 것 같다.
< 대구=김남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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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박진만이 16일 잠실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 7회말 2사 2루서 고영민의 평범한 내야땅볼을 놓친 후 망연자실하게 그라운드를 내려다보고 있다. 박진만은 이때문에 독을 품었다고 밝혔고, 3차전에서 완벽한 수비실력을 보여줬다. <스포츠조선 DB>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