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삼성 박진만은 1루 주자였다. 1-1 동점으로 팽팽히 맞선 상황. 박진만은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됐다. 박진만은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다. 신인이던 지난 1996년 11개를 성공시킨 것이 최고 기록. 이후 두자릿수 도루는 한번(2006년) 뿐이다. 한명의 주자가 아까운 경기 후반, 박진만의 도루 실패는 아픈 결과로 남았다. 경기 후 선동렬 삼성 감독은 “박진만의 도루는 스스로 결정하고 뛴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박진만의 도루는 그저 무모한 시도였던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찬찬히 따져보면 다른 결론을 도출해볼 수 있다. 3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 두산의 경기. SK는 1-0으로 앞선 3회 1사 1,3루서 박경완이 우중간에 떨어지는 적시타를 때려내 추가점을 뽑는다. 1루 주자 박정권은 박경완의 안타가 나오기 전 2루로 스타트를 끊었다. 결과적으로 히트 앤드 런이 된 것이었다. 벤치의 사인에 의한 작전이 아니었다. 김성근 SK 감독은 “아무 사인도 없는 상황이었다. 박정권이 뛰길래 나도 놀라 쳐다보고 있었다. 선수들 스스로 움직인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권 역시 발이 빠른편에 속하는 선수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무모한(?) 주루를 택했던 것일까. 1사 1,3루가 되면 가장 먼저 희생 플라이가 떠오른다. 안타 다음으로 효과적이며 안정적인 방법이다. 그 다음은 땅볼을 치는 것이다. 3루주자가 홈으로 들어올 정도의 땅볼이라면 희생 플라이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전제 조건이 한가지 있다. 병살을 면해야 한다. 1루 주자가 2루에서 포스아웃 될 정도의 땅볼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박정권의 스타트가 빛이 난 것은 이 때문이다. 박경완은 “순간 정권이가 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전까진 희생 플라이를 의식해 스윙이 좀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권이가 뛰는 걸 보고 ‘땅볼 쳐도 병살은 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밀어서 굴려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친 것이 안타가 됐다”고 말했다. 1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게 되면 2루수나 유격수 중 한명이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게 된다. 타자 입장에선 내야의 공간이 넓어져 안타 나올 확률까지 높일 수 있다. 박정권과 박경완은 아무런 사인은 없이도 마음이 하나가 되며 멋진 작품 하나를 만들어냈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 타석까지 이르는 시간은 0.4초 미만. 숨 한번 고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이뤄진 교감이었기에 더욱 빛이 났다. SK는 상대 허를 찌르는 다양한 작전이 장기인 팀이다. 그러나 모든 사인이 벤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 스스로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수들 스스로 SK 야구에 완벽히 녹아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SK가 부실해진 전력 속에서도 많이 ‘지지 않는’ 원동력이다. 다시 박진만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이날 삼성은 많은 찬스를 잡고도 결정적 한방이 나오지 않아 어려운 경기를 자초하고 있었다. 흐름을 바꿀 파격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또 막강해진 삼성 불펜을 감안하면 1점은 사실상 결승점이 될 수 있었다. 박진만이 도루를 시도했을 때 공은 볼이 됐다. 그러나 건드리지 못할만큼 어이없는 볼도 아니었다. 이영욱이 조금만 센스를 발휘했다면 충분히 굴려보낼 수 있는 공이었다. 물론 사인에 의존하지 않는 플레이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센스와 집중력만 있다면 주자와 타자의 소리없는 교감은 언제든 이뤄질 수 있다. 특히 이날 삼성처럼 꼬이기만 하는 경기서는 가끔 비정상적인 플레이가 힘이 될 수 있다. 박진만의 도루는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엔 ‘생각하는 야구’가 담겨 있었다. |
[정철우의 리뷰&프리뷰] 박진만 도루, 본헤드 아니다
정철우 2010-04-0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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