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10년

'국민 유격수' 박진만, 삼성에서 보낸 6년

사비성 2010. 11. 29. 21:19

'국민 유격수' 박진만, 삼성에서 보낸 6년

 
 
2010.11.12 08:01 | 조회 4417

 

[OSEN=이상학 기자] 깨끗한 이별이었다.

'국민 유격수' 박진만(34)이 삼성과 결별했다. 삼성은 지난 11일 박진만을 내년 시즌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시켰다고 밝혔다. 박진만과 사전 합의하에 이뤄진 결정이다. 박진만은 내년 연봉 6억원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새로운 팀을 물색하기로 했다.

박진만은 "지금보다 많은 출장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팀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두 차례 FA 계약을 성사시켜준 삼성 구단에 감사하다"고 덧붙이며 6년간 쌓은 석별의 정을 나눴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9년간 현대에서만 뛴 박진만은 지난 2004년 11월, FA 자격을 얻은 뒤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4년간 총액 39억원을 받는 FA 대박을 터뜨리며 심정수와 함께 삼성에 새 둥지를 틀었다.
 
당시 4년간 최대 6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에 FA 계약을 맺었던 거포 심정수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지만 리그 최정상급 유격수 박진만의 영입은 삼성의 FA 외부 영입사에 있어 몇 안 되는 성공사로 남아있다.

류중일의 은퇴 이후 삼성은 고질적인 유격수 부재에 시달렸다. 2002년 외국인선수 틸슨 브리또를 영입한 후 한국시리즈 우승의 숙원을 풀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삼성은 결국 외부로 눈길을 돌렸다.
 
'라이벌' 현대의 박진만 영입은 삼성의 유격수 포지션을 해결하면서 현대의 전력약화를 부를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2005년 이적 첫 해부터 박진만은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진가를 발휘했다.

박진만은 2006~2007년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최고 유격수의 위력을 과시했다. 2006년 타율 2할8푼3리 11홈런 65타점으로 5번타자까지 타순이 올랐던 박진만은 그해 한화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거짓말같은 수비쇼를 선보이며 MVP를 차지했다.
 
홈런 하나없이 시리즈 3할대 미만 타율로 MVP를 차지한 건 박진만이 처음. 그만큼 신기의 수비를 보였다. 2007년에도 100경기에서 타율 3할1푼2리 7홈런 56타점으로 활약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선동렬 감독이 주창하는 '지키는 야구'에 있어서도 박진만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선 감독은 무한경쟁 체제를 선언할 때에도 "박진만은 주전"이라고 못박을 정도로 믿음을 보였다. 2008년 시즌 초에는 "타격은 10번 중 3번만 잘 해도 최고 타자 소리를 듣지만 수비는 10번 모두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건 몰라도 박진만은 꼭 잡아야 한다"며 박진만의 잔류를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박진만은 2008년 타율 2할4푼4리 5홈런 38타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렸지만 그해 말 계약금 6억원, 연봉 6억원 등 총액 12억원에 두 번째 FA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박진만은 오른 어깨 통증과 종아루 부상으로 출장경기수가 크게 줄었다. 그해 76경기에서 타율 2할5푼6리 6홈런 29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올해는 큰 부상이 없었는데도 46경기 출장에 그쳤고 시즌의 상당기간을 2군에서 보냈다.
 
신예유격수 김상수가 치고 올라오면서 박진만의 자리가 없어졌다. 올해 46경기에서 기록한 실책이 12개나 될 정도로 수비의 안정감이 떨어졌고 타격에서도 타율 2할3푼7리 1홈런 14타점으로 미미했다. 김상수에게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포스트시즌에는 3루수·2루수로 출장했다.

삼성은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유망주 김상수가 차세대 유격수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박진만의 활용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박진만은 팀을 떠날 의사를 내비쳤고 삼성도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 조건없이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줬다.
 
박진만은 "6년간 정들었던 대구를 떠나게 되어 아쉬움이 크다. 지금껏 많은 분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삼성은 박진만과 함께 한 6년간 한국시리즈 우승을 2차례 차지했으며 4강에도 5차례 올랐다. 박진만은 삼성에서 골든글러브를 2차례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