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선수. 절대 화낼 것 같지 않은 선수. 국가 대표팀의 파란 유니폼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선수. 하지만... 그동안 나와는 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단 사실이, 박진만 선수와 인터뷰 약속을 덜컥 잡아놓고 나서야 비로소 떠올라 걱정이 앞섰다. 더군다나 인터뷰를 약속한 그날 두산과의 시범경기에서, 그는 아쉬운 수비를 보여줬다. 썩 기분이 좋을 수 없는 상황에,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선수 본인도 언제 시간이 날지 정확히 계산이 서지 않는 눈치였다. 이제 옮겨 간 새로운 팀 SK에서, 그는 마치 신인 선수 같았다.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그의 눈웃음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여전했다. 나의 긴장감을 녹이는 웃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밝은 SK 박진만 선수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구석에 앉아서 빵 먹고 있는데 좀 처량하긴 하더라"
"20년 가까이 유격수만 하다가, 지난해 2루수를 하려니 정말 낯설었어요"
"2루수 전향때 다른 팀 가고 싶은 맘 있었다. 삼성에서 의사 존중해줘 감사"
"지금 쭈그려 앉아 빵 먹는 건 행복한 처량함이라면, 그때는 좀 비참할 정도"
"럭키보이 인정. 고향팀에 왔고 주전유격수도 군대갔고, 늘 달던 7번도 얻었고"
"SK 막상 들어와 보니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분위기가 밝아요"
"목표는 우승. 박진만 와서 우승 못했단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은 ‘인천의 박진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게 욕심"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아 고향팀 인천에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고 있는 박진만 (사진=OSEN 제공)
드디어 시범경기가 시작됐다. 그에게 이번 봄은, 어떨까?
“16년 째인데, 제 몸 컨디션이 아직 캠프 컨디션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원래 고참들은 시범경기에서는 쉬엄쉬엄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SK 와서는 너무 열심히 했는지 아직 캠프 때 여파가 남아 있네요. 좀 무리한 것 같기도 해요. 젊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는 회복이 좀 더뎌요. 그래도 개막까지 한 보름 남았으니까 끌어올려야죠.”
그러다 결국 사람 좋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고백’한다.
“사실은, 나 아직 적응이 안 됐어. SK에 아직 적응이... 하하”
SK의 훈련양은 정말 많았단다. 특히나 훈련 중간 중간 휴식 시간이 많이 짧았음을 특징으로 꼽았다. 식사 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조별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며 그 안에 식사도 마쳐야 하는 상황이란다. 그러잖아도 지난 두 시즌 SK의 전지훈련을 취재한 김민아 아나운서에게 많이 들었었다. SK 선수들은 빵을 손에 쥐고 나와 먹으며 훈련한다고.
“밥 먹을 시간도 얼마 없어서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돼요. 그래서 빵 같은 거 좀 먹고 바로 훈련하고 그러는 거예요. 구석에 앉아서 빵 먹고 있는데 좀 처량하긴 하더라. 하하. 그래도 마음이 편하니까. 몸은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어요.”
국민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지난 포스트시즌, 2루수로 출장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어색했다.
“20년 가까이 유격수만 하다가, 2루수를 하려니 정말 낯설었어요. 방향이 다 반대거든요. 유격수는 1루 방향으로 전진하며 공을 잡고 던지는데 2루수는 반대잖아요. 백업 가는 것도 다르고. 타구가 딱 나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유격수 수비를 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쉽지 않더라고요.”
수비 위치가 바뀌는 것은 선수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다. 수비는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해 몸이 바로 반응할 정도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혹시, 이미 그때 다른 팀으로의 이동을 생각했었는지 물었다.
“솔직히 있었어요. 당시 선 감독님은 세대교체를 원하셨고, 제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삼성이 선수로 더 뛰고 싶다는 제 의사를 존중해주었어요. 저로서는 참 감사한 일이었어요.”
역시 선수에게는, 돈보다는 그라운드가 더 매력적이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처량했어요. 하지만 지금 쭈그려 앉아 빵 먹는 건 행복한 처량함이라면, 그때는 좀 비참할 정도였으니까. 지금과는 달라요.”
불과 2~3년 전까지 최고의 유격수로 국가 대표팀까지 이끌었던 그가 왜 갑자기 이렇게까지 안 좋아졌을까.
“몸이 많이 안 좋았어요. 2008 시즌 앞두고 올림픽 예선전을 했을 때부터 어깨에 통증이 있었고 무릎도 아팠죠. 그러다보니 훈련양이 충분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젊었을 때와 달리 순발력이 떨어진 것을 실감해요. 그래서 김성근 감독님은 나이가 좀 있는 선수들은 나이 어린 선수들보다 더 많이 훈련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줄어든 순발력을 메우기 위해서.”
선수들은 몸이 아플 때가 가장 답답하다고 한다. 아프지 않으면 훈련이라도 열심히 하면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데 아플 땐 그럴 수조차 없어 마음만 더 급해진다고.
“지금도 몸이 완전히 나아진 건 아니에요. 하지만 SK로 오면서 ‘힘들어도 한 번 해보자’ 라는 각오였어요. 그 힘들다는 훈련, 소화해보자. 그리고 지금 이게 다 나에게 필요한 훈련이라는 믿음도 있고. 그래서 그런지 몸은 힘든데 마음은 편안해요.”
‘박진만’ 하면 유격수가 떠오를 정도로 그는 이 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였다. 그만큼 유격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애착도 클 것 같은데, 유격수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 박진만 선수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했다.
“SK에 올 때도 주전 자리를 보장 받고 온 건 아니에요. 여기에서 새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죠. 굳이 유격수를 고집하지 않아요. 유격수는 확실히 수비하기 힘든 포지션이에요. 팀에서 필요로 하는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저는 꼭 유격수를 고집하기보다, 경기에 많이 나가고 싶어요.”
선수로서 더 활약하고 싶은 박진만 선수의 마음은, 그를 더 고향으로 이끌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을 연고로 하던 시절에 입단했고, 삼성에서 활약하던 시절을 지나 다시 인천을 연고로 하는 팀 SK로 왔다. 그에게 인천은 어떤 존재일까? 새로 붙은 ‘고향만두’라는 별명은 알고 있을까?
“하하, 들었어요, 고향만두. 좋죠. 원정팀으로 방문한 기억이 더 많지만 역시 고향이더라고요. 태어난 곳이고, 중고등학교까지 다 다닌 곳이고, 부모님 역시 쭈욱 살고 계시는 곳이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죠. 전 정말 누가 이끌어주나봐요. 지난 선수시절도 평탄하게 잘 풀린 편이었는데 지금 또 저를 불러준 팀이 하필 고향 팀이고, 주전 유격수가 군대를 가는 바람에 제게 기회가 왔고, 제가 온 시점에 김재현 선수가 은퇴하면서 제가 늘 달던 등번호 7번을 자연스럽게 다시 달게 되고. 뭔가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에요. 사람들이 그래요, 럭키보이라고.”
지난 몇 년 간 힘든 시기를 보냈으면서, 그래도 자신은 운이 좋은 선수였다고 이야기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걸까? 아니면 치열한 경쟁세계에서 기를 쓰고 열심히 했는데도 영광을 누리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기 때문일까? 만일 정말 운이 좋은 거라면, 그건 밝은 표정 때문일까?
“우린 프로야구 선수니까요. 프로 선수라면 힘들어도 그런 내색을 하기보다 행복하게 야구한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로야구는 팬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아는 선수다. 역시.
“경쟁은 우리의 숙명이죠. 당연히 따르는...”
새로운 곳에서 그는 또 경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늘 상대팀으로 만났던 SK. 정말 강했던 SK. 지난 시즌 한국 시리즈에서 삼성에게 단 한 경기도 내주지 않고 우승반지를 가져가버린 SK. 이제는 그 SK의 선수가 됐다.
“막상 들어와 보니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분위기가 밝아요. 많은 훈련양이나 경쟁, 이런 것들은 이제 선수들에게 익숙해져 버렸나봐요. 그 스트레스를 이기는 방법을 알아요. 저는 내야수다보니 근우나 호준이형과 보내는 시간들이 많은데, 힘들게 훈련하다가도 이들이 한 마디 씩 던지는 것에 빵빵 터져요. 분위기가 정말 좋은 팀이에요.”
인터뷰 분위기가 좋아지자,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날 두산과의 시범경기에서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공, 왜 놓쳤던 걸까?
“보셨어요? 제가 아직 마음이 급하네요, 어깨가 완전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공을 잡을 때 이미 던질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이 단순해야 하는데, 공이 오는 것을 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해요. 그런데 예전엔 이렇게 공을 빠트리면 ‘다음’에 잘해야겠단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다음’을 생각 안 해요. 마음 자세가 바뀌었어요.”
어찌 보면, 소속팀을 옮긴 것은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지기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난 몇 년 간, 아프다는 이유로 마음이 느슨해져 있었어요. 그 상태에서 기회가 오질 않으니 점점 더 의욕도 잃었었고. 그런데 팀을 옮길 생각을 했을 때부터는 마음을 다잡았어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미련 없이 다 쏟아보자. 몸 상태가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안 좋으면 다른 거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새로운 곳으로의 이적. 스스로를 다그치는 자극제가 됐다. 새로운 각오, 새로운 팀, 그렇다면 목표는?
“우승이요. 작년에 우승했던 팀인데 박진만 와서 우승 못했단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현대에서 4번, 삼성에서 2번 우승하면서 각각 현대에서 한 번, 삼성에서 한 번 준우승했었어요. 한국시리즈 올라가서 질 거면, 아예 안 올라가는 게 나아요. 우승만을 보고 달려왔는데 눈 앞에서 놓치고 난 뒤의 그 패배감은, 뭐라 설명할 수가 없어요. 특히, 올해는 제가 합류한 첫해니까 꼭, 우승하고 싶어요.”
현대, 삼성에서 총 6번 모두 우승을 경험해 본 박진만. 마지막 소속팀이 될지도 모르는 SK에서 7번째 우승을 하고 싶은 것이 그의 목표였다. (사진=OSEN 제공)
새로운 도전이다. ‘국민 유격수 박진만’은 스스로 잊었다. 소망하는 대로, 그 함성 속에서 사랑하는 야구와 좀 더 오래 함께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이 배운다며 머쓱해 했다.
“여기 선수들은 우승을 많이 해봐서 알아요. 우승이 어떤 건지, 왜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야구를 잘하는지. 그리고 정말 요즘 젊은 선수들은 우리 때랑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 야구가 해외에서도 기죽지 않고 잘하나봐요. 제가 신인이에요. 배우고 있어요. 아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밝은 표정의 박진만 선수. 그와의 인터뷰는 즐거웠다. 나이 들어가는 현재를 받아들이며 마지막을 불태우고 싶다는 그를 보니, ‘박진만’이라는 선수에게 따라다니던 ‘국가대표 유격수’라는 말보다 야구 선수 박진만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나이 들어서는 피로가 쌓이게 두면 안 되는 거였더라고요. 그때그때 풀어줘야 나중에 탈이 없더라고요. 이제는 젊을 때와 다르다는 걸 알아요.”
듣고 있던 나는 내 눈 밑 주름을 가리키며 맞장구 쳤다. 나는 이 주름 때문에 미치겠다고. 박진만 선수의 눈이 더 작아지며 웃는다. 자신의 눈 밑 주름을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펴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전 눈 밑 주름 열심히 펴고 있어요.”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는 인천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힘주어 이야기한다.
“새로운 모습의 박진만을 보여드릴게요. 마지막은 ‘인천의 박진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에요. 만일 은퇴를 한다면 여기서 하고 싶어요. 그만큼 마지막이란 각오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커요. 여기 팬들에게.”
프로 선수로서 맞이하는 열 여섯 번째 봄이다. 그는 다시 한번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담금질하고 있다. 하지만 푸른 빛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던 그 박진만보다 SK 빨간 유니폼을 입은 ‘인천의 박진만’이 될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갖고 있는 5개의 골든글러브에 이어 6번 째 골든글러브도 노릴 수 있는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수의 우승반지도 갖고 싶다. 아니, 더 가질 수 있다면 더 갖고 싶은 게 우승반지다. 스스로도 안다. 과거보다 몸이 둔해졌고, 수비 폭이 좁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시선은 그에게 더 이상 의미 없었다. 이미 받아들였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후회 없을 만큼이면 됐다. 야구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가장 빛이 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인천 팬들에게 꼭 보답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어떤 봄을 선물할지, 아니, 어떤 가을을 선물할지,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보태기 - 전지훈련 기간 중 태어난 둘째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란다. 기사가 잘못 나간 거라며, 아들만 둘이라 아내가 고생이 많다고 한다. 글쎄, 박진만 선수의 성격을 닮은 아들 둘이라면, 참 얌전하지 않을까?
[출처] 송지선 | 박진만 "'인천의 박진만'으로 기억되고 싶다" (국민유격수 박진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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