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12년

박진만 사례, 유격수의 1루전환 결코 안쉬운 까닭

사비성 2012. 8. 1. 23:04

박진만 사례, 유격수의 1루전환 결코 안쉬운 까닭

 

보통 내야진에선 1루수가 수비하기 편한 포지션이란 얘기가 있었다. 과거엔 거포형 외야수가 나이가 들면서 힘이 빠지면 1루수로 포지션이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다 옛날 얘기다. 갈수록 좋은 왼손타자가 늘어나면서 1루수는 3루수와 비슷하게 '핫코너'를 책임지는 존재로 바뀌고 있다. 1,2루를 향하는 푸시번트도 많아지고, 익사이팅 존이 늘어나면서 1루수는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많아졌다.

1루에 익숙하지 않은 선수가 만약 1루를 맡게 되면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27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실제 사례와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날 SK 박진만이 43일만에 1군 엔트리에 복귀했다. 그리고 곧바로 2번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1루수 선발 출전이 올해 7번째라고 하니 특별한 '사건'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박진만은 한국프로야구 최고 유격수의 계보상에 위치한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1루를 맡는 건 여전히 낯선 풍경이긴 하다.

▶방향성, 배트 각도의 미묘한 차이

박진만은 전날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한 임 훈 대신 1루에 섰다. 임 훈이 아무래도 부담을 느끼고 있어 박진만이 1루수로 선택된 것이다.

이날 원정팀인 LG의 유지현 코치에게 "유격수 출신이 1루에 서면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유 코치 역시 유격수 레전드 계보를 이었던 인물. 유지현 코치는 "아무래도 방향성에서 어색하다. 유격수와 2루수는 포수를 바라보는 각도가 사실 많이 비슷하다. 거리 감각도 비슷해서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3루수와 1루수는 얘기가 달라진다. 포수까지의 거리 감각이 달라진다. 내 수비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 지를 처음엔 가늠하기 어렵다. 또한 기존과 다른 각도로 포수를 보고 있어야하는데 타자들의 배트 나오는 각도나 타구 각이 낯설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지현 코치 본인도 과거 김성근 감독이 LG를 맡고 있던 시절에 딱 한번 유격수 대신 3루수로 뛴 적이 있다고 했다. 유 코치는 "그때 정말 너무 어려워서 쩔쩔 맸다"면서 웃었다. 선수 시절의 말년엔 2루수로 꽤 많이 뛰었다. 유격수가 2루수로 뛰는 건 같은 '족보'에 속하는 일이라 비교적 수월하다는 얘기였다.

이밖에도 외야로 타구가 나갔을 경우 백업플레이에서도 유격수와 1루수는 움직임이 다를 수밖에 없다.

▶1루수, 동료들의 송구 특성까지도 파악해야

포수로 오래 뛴 선수가 외야수로 전향하는 게 대표적인 어려운 케이스로 꼽힌다. 타구를 늘 뒤에서만 바라보던 선수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타구를 상대하게 되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1루수는 내야진의 지향점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다. 다른 내야수들은 일단 공을 잡으면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쪽, 즉 1루를 향해 던지는 게 기본이다. 그랬던 선수가 1루수를 맡으면 이젠 공을 받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1루수로 오랜 경험이 생기면 동료 내야수들의 송구 특징까지도 훤하게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면 A라는 유격수가 역모션으로 어렵게 잡은 뒤 송구를 할 경우 공이 어떤 회전으로 날아올 지, 혹은 바운드가 될 지 여부 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새로 1루를 맡은 선수는 이런 세밀한 부분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날 3회초 LG 공격때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했다. 2사 2루에서 LG 서동욱이 친 타구가 2루수 정근우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타구가 느렸다. 달려나오면서 타구를 수습한 정근우가 1루수 박진만에게 송구했는데 원바운드가 됐다. 박진만이 공을 잡지 못했다. 서동욱은 살았고, 공식 기록은 2루수 실책.

그간 유격수로 뛰면서 수많은 어려운 바운드를 깔끔하게 잡아냈던 박진만이다. 글러브 움직임이 최고 레벨인 박진만이 2루수의 원바운드 송구를 놓친 건 그만큼 낯선 포지션에서, 낯선 타이밍으로 공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워낙 수비 센스가 좋은 박진만이기에 비교적 무난하게 1루를 맡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재 각 팀의 솜씨 좋은 유격수들을 1루로 보내놓으면 손사래를 치면서 당황해할 케이스가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