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의 사나이들이 한국시리즈를 향한 관문에서 팽팽한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SK 박진만은 현역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우승 반지를 낀 '한국시리즈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현대 시절 4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을 이끌었고, 삼성으로 이적한 뒤 두 차례 더 우승반지를 꼈다. 특히 2003년과 2004년에는 현대를 2년 연속 우승시킨 뒤 자유계약선수(FA)로 삼성으로 이적해 또다시 삼성을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놨다. 팀을 바꿔가며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선수는 박진만이 유일하다.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깔끔하기로 정평이 난 유격수 수비 외에도 타율 0.385의 무시무시한 타격을 선보였고, 2006년에는 승부의 분수령이 됐던 3차전 연장 12회에 내야안타로 결승점을 뽑는 등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쳐 시리즈 MVP에 오르기도 했다.
데뷔 이후 단 세 차례를 제외한 14시즌이나 포스트시즌을 경험했고 무려 93경기에 출전해 포스트시즌 최다경기 출장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플레이오프(PO)를 통과할 경우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100경기 출장의 대기록을 달성할 가능성도 높다.
박진만은 "포스트시즌에서 많은 경기를 뛸 수 있었던 것은 옮겨다닌 세 팀이 모두 전력이 좋고 훌륭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영광스런 기록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은 100경기 목표보다는 오직 1위, 우승에만 신경쓰고 싶다. 우승 하면 100경기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말했다.
박진만은 지난 해에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려 7번째 우승반지를 위한 도전에 나섰지만 아쉽게 '친정' 삼성을 넘지 못했다. 데뷔 시즌이었던 1996년을 제외하면 자신이 출전했던 한국시리즈에서는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0년에는 SK에 완패당한데 이어 이듬해에는 SK 유니폼을 입고 삼성에 무릎을 꿇으면서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좌절했다. 실패를 몰랐던 '우승 청부사'로서 지난 2년간의 실패는 너무나 아쉬웠고, 그 진한 아쉬움을 이번만은 곱씹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제는 자신의 포지션인 유격수 자리보다는 1루수로 나서는 경우가 더 많아졌지만 그의 가장 큰 자산은 역시 풍부한 포스트시즌의 경험이다.
경험이라면 롯데 홍성흔도 뒤질 것이 없다. 박진만에 이어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두번째로 많은 경기를 뛴 선수가 바로 롯데의 홍성흔이다. 홍성흔은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4경기에 모두 출전해 삼성 진갑용(77경기)를 제치고 80경기로 이 부문 단독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차이가 있다면 언제나 최강팀에 있었던 박진만에 비해 아픈 경험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박진만이 포스트시즌 출장 경기수의 절반이 넘는 52경기를 한국시리즈로 채워넣은 반면 홍성흔은 포스트시즌의 대부분을 준PO와 PO에 소진했다. 지난 해 2위로 PO에 진출하고도 준PO를 거친 SK에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던 홍성흔은 당시의 아픔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겠다며 설욕을 벼르고 있다.
박진만이 공격보다는 수비로 팀에 공헌했다면 홍성흔은 폭발적인 타격으로 팀을 이끌며 고군분투했다. 그의 방망이는 늘 화끈했다. 두산과의 준PO에서도 6개의 안타를 추가해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88개로 늘렸다. 승부를 결정지은 4차전에서만 3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둘러 해결사의 면모를 톡톡히 과시했다. 포스트시즌 통산 타점에서도 두산 김동주(40타점)에 이어 2위(36타점)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동갑내기인 박진만이 주로 백업요원으로 뛰고 있는 반면 홍성흔은 여전히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롯데의 중심타선을 이끌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박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