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하남직]
"(정)근우가 주지 않으면 몰래 가방에서 빼가야지."
박진만(36·SK)은 괜한 걱정을 했다. 정근우(30·SK)는 "내 배트로 안타를 치시겠다는데, 아낄 필요가 있나. 빌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드린다"고 호쾌하게 말했다.
'정근우의 요술 방망이'가 마법을 부리고 있다. '주인' 정근우는 물론이고 '빌려쓰는' 박진만까지 효과를 누렸다. 정근우의 배트가 한국시리즈(KS) 4경기에서 만들어낸 안타는 총 12개. SK 총 안타수(35개)의 ⅓이 넘는다. 팀내 타율 1위는 박진만(0.455·11타수 5안타)이고 2위는 정근우(0.438·16타수 7안타)다.
박진만은 10월29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KS 4차전을 앞두고, 정근우의 배트 가방을 가리켰다. "저기에 대단한 물건이 있거든."
박진만은 8월부터 정근우의 배트와 자신의 것을 번갈아 사용했다. 그런데 8월 22일 문학 한화전에서 정근우의 배트로 홈런을 쳤고, 9월에 기록한 3개의 홈런도 모두 정근우의 배트에서 나왔다. 박진만은 8월과 9월 2자루씩, 총 4개의 배트를 받았다. 그런데 KS 3차전 마지막 타석(7회)에서 마지막 남은 배트가 부러졌다. 박진만은 후배 정근우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배트를 받아내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취재진을 통해 박진만의 '의지'를 확인한 정근우는 호탕하게 웃은 뒤 "남자끼리 빌려주는 게 어딨나. 그냥 드리겠다. 라커룸에 들어가면 선한 눈으로 날 바라보실 것이다. 괜히 스트레스 받으실 수 있으니까, 바로 드리겠다"고 말했다.
정근우는 길이 33.5인치, 무게 860~880g 짜리 배트를 주문해서 사용한다. 박진만은 지난 8월 초 우연히 정근우의 배트를 들었고 "내가 원하는 '손 감각'을 느꼈다"고 했다. 정근우는 "아무리 무게와 길이를 똑같이 한다고 해도, 타자가 느끼는 감이 다르다. 진만이 형도 나와 같은 길이·무게의 배트를 쓰는데 내 배트를 잡으면 '감'이 온다고 하더라"라고 설명을 더했다.
KS에서는 심리적 효과까지 작용했다. 박진만은 "플레이오프부터 근우가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지 않나. 잘 맞는 선수 배트로 치면 빗맞아도 안타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라고 했다. 정근우는 또 웃었다. 그는 "그 정도까지 칭찬을 하신다면, KS 끝나고 밥 한번 얻어먹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