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진수 기자] ‘국민 유격수’로 많은 야구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박진만(38)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SK는 박진만이 구단과의 면담을 통해 은퇴를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박진만은 내년부터 SK 1군 수비 코치로 새 출발한다. 그의 길고 길었던 20년간의 선수생활을 숫자로 풀어봤다.
박진만이 26일 공식 은퇴를 선언하면서 20년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사진=MK스포츠 DB |
▲1 = 20년간 프로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한 박진만이지만 팬들이 가장 기억할 한 장면을 꼽으라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뽑을 수 있을 듯하다. 3-2로 앞선 9회 1사 만루에서 유니에스키 구리엘이 친 땅볼을 유격수 박진만 앞으로 굴러 왔다. 침착하게 병살타로 연결시키면서 한국 야구 올림픽 사상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
▲3 = 박진만의 프로생활 소속팀 유니폼 개수. 1996년 인천고를 졸업하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그는 2005년 FA(자유계약) 신분으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2010년을 마치고는 고향 팀인 SK 와이번스로 이적해 남은 선수 생활을 이었다.
▲5 = 박진만의 유격수로서 얻은 골든글러브 횟수. 유격수로 역대 최다인 5번을 획득했다. 최고의 수비를 자랑한 박진만의 업적.
▲6 = 박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횟수.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만 4번(1998·2000·2003·2004년)의 우승을 맛봤다. 우승의 순간 수비의 중심에는 박진만이 있었다. 2005년 삼성 이적 뒤에도 2005~2006년 우승의 주역이었다.
▲20 = 박진만의 프로생활 연수. 1996년에 데뷔한 박진만은 올해까지 무려 20년간 프로생활을 했다. 한국야구에서 프로생활 20년은 흔치 않다.
▲312 = 박진만의 한 시즌 최고 타율. 2007년 3할1푼2리를 기록했다. 박진만은 프로통산 20년간 두 차례 3할 타율을 기록했다. 통산 타율이 2할6푼1리 밖에 되지 않았지만 2007년만큼은 달랐다. 이 당시 타격 10위에 올랐다.
▲1993 = 박진만에게는 가장 아쉬울 수 있는 기록. 프로통산 2000경기 출장해 7경기 만을 남겨놓고 은퇴를 선언하게 됐다. 지난 9월 10일 대전 한화전에서 볼넷을 얻고 1루로 귀루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 박진만의 마지막 경기 출전이 됐다.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으면 역대 8번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