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22년

여우 밑에 더 큰 여우 있었다![최익성의 정면돌파]

사비성 2022. 10. 24. 16:07

여우 밑에 더 큰 여우 있었다![최익성의 정면돌파]

 

KBO리그 ‘대표 여우’는 김재박 감독이다. 그런데 여우 밑에 더 큰 여우가 있었다. 박진만이다. 나는 2002년 중반 현대로 이적해 2003시즌까지 그와 함께 생활했다. 밖에서 보는 박진만과 안에서 보는 박진만은 달랐다.

그의 별명은 ‘만두’다. 볼살이 있어 푸근한 얼굴, 늘 웃는 상이라 그런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 막상 같은 유니폼을 입고서 경험한 박진만은 놀라운 존재였다. ‘수’가 남들보다 한 수 더 빨랐다. 한박자 빠른 수비와 송구. 상황에 맞는 플레이.

 

이건 말이 쉽지, 그만큼 남들과 다른 시야를 가져야 가능하다. 박진만은 천천히 플레이 하는 듯 해도 주자가 베이스를 밟기 한발전에 공을 보냈다. 급박할 때는 노스텝으로 던졌는데 이때도 늘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 이런 플레이를 완성하려면, 타구만 쫓지 않고 주자의 러닝까지 머릿속에서 3차원으로 그려야 한다.

프로가 보는 프로가 있다. 그게 진짜 실력자다. 박진만이 그랬다. 당대 내로라 하는 유격수들보다 확실히 우위였다. 나는 7개 구단을 다니며 많은 유격수를 경험했다. 그 많은 유격수 중에 감탄하며 지켜본 선수는 박진만이 유일하다.

수비를 너무 안정적으로 한 탓에 오해도 생겼다. 몸을 던지지 않고 설렁설렁 한다는 오해였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실체는 다르다. 만두 박진만은 평상시 매우 온순하고 늘 웃는 좋은 후배였다. 하지만 그런 만두의 푸근함에 속으면 안된다. 그 속에 여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원조 여우 김재박 감독은 정해진 루틴이 있었다. 상황에 맞게 여우처럼 딱딱 맞는 수를 썼다. 그게 당시 승리방식이기도 했다. 안정감의 대명사 박진만은 결이 달랐다. 정해진 루틴은 있지만 그속에서 변화무쌍했다. 한마디로 신세대 여우였다.

박진만식 야구는 변수가 많은 요즘 야구에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감독 승격을 선수들이 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몸을 섞는 선수들이 박진만의 매력을 더 잘 알 것이다. 그의 감독 선임을 충분히 공감한다.

물론 우려도 있다. 클래스가 남다른 선수출신 감독이 가지는 맹점이다. 뚜렷한 소신과 고집이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박진만은 유격수 출신이다. 포지션별 특성이 있다. 포수가 안방의 지휘자라면 유격수는 밖에서 선수를 조율한다. 내·외야의 행동대장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라도 유격수는 홈런왕이나 20승 투수와는 성향이 다르다. 유격수는 주변 선수를 챙기고 다독이는 임무가 몸에 배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도 감내한다.

 

런 측면에서 박진만은 정식 감독이 되어서도 편안함 가운데 무게 중심을 잡을거라 기대한다. 현역시절 박진만이 유격수를 보면 팀이 전체적으로 편안했다. 그 자리에서 실수가 거의 없었다.

감독이라는 위치도 마찬가지다. 박진만은 가장 중요한 자리에서 중심을 딱 잡고 팀 전체의 안정감을 도모하리라 본다. 만두로 위장한 진짜 여우 감독이 본색이 드러날거다.

그리고 내년 시즌, 두산 이승엽 감독과의 대결도 기대된다. 이승엽은 최고에 대한 갈망이 매우 강하다. 반면 박진만은 중심을 잡는 힘이 강하다. 두 신임 감독의 대결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전체 프로야구의 흥행 카드임에도 틀림없다. 나아가 유격수 출신 류지현 감독과의 지략싸움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