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23년

압도적 눈썰미…매의 눈을 가진 만두 감독

사비성 2023. 2. 6. 10:21

압도적 눈썰미…매의 눈을 가진 만두 감독

[OSEN=백종인 객원기자] 지난 해 8월 4일이다. 잠실에서 라이온즈가 베어스를 만났다. 원정 팀 사령탑은 초보다. (감독)대행 완장 차고 두번째 경기다. 아직 1승도 못 해봤다.

다행이다. 이날은 출발이 좋다. 6-0으로 술술 풀린다. 그러던 5회 수비였다. 1사 1루에서 박세혁을 1루 땅볼로 처리했다. 1루수(오재일) →유격수(오선진) →투수(원태인)로 이어졌다. 이른바 리버스 더블 플레이다.

이닝 종료를 확신한 원태인은 주먹을 불끈 쥔다. 덕아웃으로 철수하려는 찰라. 1루심(나광남)이 발걸음을 잡았다. 세이프 시그널이다. 수비 쪽은 펄쩍 뛴다. ‘무슨 소리요?’ 즉각 벤치에 구조 요청을 보낸다. 비디오 판독을 신청해달라는 SOS다.

신고를 접수한 초보 대행은 게임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심판을 향해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엄숙한 표정으로 ‘내 귀에 캔디’를 시전한다. 순간 그라운드가 얼어붙는다. 너무나 뇌쇄적이었나? 그랬으면 좋으련만. 아니다. 뭔가 잘못됐다.

원정 팀 덕아웃이 바빠진다. ‘그건 MADE IN USA인데요.’ 급하게 한국산 동작을 알려준다. 당사자도 그제야 깨닫는다. ‘아차, 메이저리그를 너무 봤더니….’ 다시 손가락 네모를 그린다. 여기저기서 빵 터진다.

어쨌든. 심판이 헤드셋을 쓴다. 판독 결과는 10초 만에 나왔다. 아웃은 번복되지 않았다. 원심 유지다. 그래도 승리는 변하지 않았다. 최종 스코어 9-2. 박진만 대행이 첫 승을 올린 날이다.

 

비디오 판독은 때로 결정적이다. 승부를 바꾸는 묘수가 되기도 한다. 작년 8월 12일 대구 경기가 그랬다. 중위권 싸움이 치열할 때다. 원정 팀 타이거즈는 불안한 5위였다. 홈 팀은 9위로 처졌지만, 아직 희망이 남았을 때다.

양현종-원태인 대결은 의외로 타격전이었다. 뒤지고 있던 KIA는 탄탄한 불펜을 가동시킨다. 후반 들어 맹렬한 추격전이다. 7-4 스코어는 어느 틈에 턱 밑(7-6)까지 좁혀졌다. 그리고 마지막 9회 초 공격이다. 선두 최형우가 돌부처에게 안타를 뽑았다. 대주자 김도영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만든다.

계속된 1사 2루. 이번에는 대타다. 고종욱이 매서운 눈빛으로 등장했다. 카운트 2-1에서 4구째. 134㎞ 슬라이더가 안쪽 낮게 떨어진다. 그냥 놔두면 볼이었다. 그런데 타자가 걸려들었다. 배트가 간신히 따라붙는다. 어설프게 걸렸지만, 타구는 꽤 괜찮았다. 좌중간에 떨어진 안타다.

홈 관중들의 비명이 터진다. 2루 주자 김도영은 내친 김에 홈까지 노린다. 안타의 코스나 주자의 달리기를 감안하면 결과는 낙관적이다. 끝판대장도 대략 낭패한 얼굴이다. 좌익수(호세 피렐라)가 혼신을 담은 송구를 뿌렸다. 하지만 구심은 양팔을 벌린다. 세이프 선언이다. 7-7 동점. 원정 팀 덕아웃이 뒤집어졌다.

바로 그 순간. 냉정한 표정의 만두 감독이 등장한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내 귀에 캔디'가 아니다. 정확한 네모를 그린다. 재심 요청이다.  KBS N Sports의 리플레이 화면이 전광판에 뜬다. 첫번째는 카메라 각도가 애매하다. 다른 앵글로 또 한번 재생된다. 미세한 차이가 드러났다. 동시에 라이온즈 파크에 환호가 터진다. 신중한 확인 작업에 2분이 흘렀다. 결과는 아웃. 원심이 뒤집혔다. 삼성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이다.

 

정규 시즌(2022년) 동안 비디오 판독은 856회 요청됐다. 이 중 원심이 바뀐 것은 220번(25.7%)이다. 넷 중 한번은 판정이 뒤집힌 셈이다. 2017년 도입된 이후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긍정적인 신호임은 물론이다.

◎ 비디오판독 연도별 번복률

▶ 2017년 = 31.2%

▶ 2018년 = 29.2%

▶ 2019년 = 27.9%

▶ 2020년 = 27.3%

▶ 2021년 = 27.5%

▶ 2022년 = 25.7%

팀별로는 삼성이 가장 많다. 여기엔 박 감독의 지분이 크다. 8월 1일 대행을 맡은 이후 35번을 청구해서 16번이나 재가를 얻어냈다. 무려 45.71%의 비율이다. 가장 낮은 LG(류지현 감독)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물론 비디오 판독은 감독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다. 당사자인 선수의 감이나, 코칭 스태프의 조언, 게임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재권자다. 그의 눈썰미와 판단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현역시절의 풍부한 경험과, 센스의 산물이라고 본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