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02년

[아이러브스쿨] <6> 인천고

사비성 2002. 4. 29. 00:17
[아이러브스쿨] <6> 인천고
[굿데이 2002-04-29 10:50]
학교 문을 연 지 107년이 지났다. 그 기나긴 세월 속에 인천고 야구부도 1912년 창단, 91년의 '시간 열차'를 타며 명문으로 성장해왔다. 전국대회 우승 12회에 프로선수 60여명 배출. 인천·경기지역에서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고가 남긴 '업적'들이다.

▲명문의 이름으로(1912∼1970년)

인천고 야구는 50년대에야 비로소 꽃을 피웠다. 창단 이후 40년 동안 우승 경험이 없던 인천고는 52년 전국체전에서 '우승 신고식'을 올린 뒤 53년과 54년 3관왕을 차지하며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50년대에 거머쥔 전국대회 우승컵만 모두 9개.

'50년대 인천고 야구'하면 항상 서동준(전 한일은행)과 김진영(전 롯데 감독)을 떠올린다. 오른손 투수 서동준은 52·53년 인천고 전성시대를 이끈 뒤 10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은 유격수로 55년 화랑기 홈런왕에 오르는 등 전국대회에서 개인상을 휩쓸기도 했다.

▲전통을 이어받아(1971∼2001년)

이 기간에 전국대회 정상 문턱에서만 미끄러진 게 모두 8번. 특히 79년 전국대회 준우승 4회는 인천고 야구사에 있어서 가장 아쉬운 대목. 당시 '초고교급 투수' 최계훈(SK 코치)을 앞세워 정상을 노렸지만, 윤여국이 이끌던 광주상고(청룡기)와 진동한의 경북고(봉황대기)에 져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최상덕(기아)과 허호석(전 제물포고 코치)의 어깨로 89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해 35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컵을 안았고, 95년 '고교 최고 유격수' 박진만(현대)의 방망이로 전국체전 금메달을 따내 개교 100주년을 자축했다.

▲영광이여 다시 한번

96년 김수경(현대)의 활약으로 봉황대기 준우승을 차지한 뒤 인천고는 오랫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하지만 4번 반재륭과 김순겸(이상 2년·내야수) 등이 주축이 되는 내년에는 전국대회 4강을 노려볼 만하다.

시설과 지원면에서는 고교 최상급이다. 지난해 6억원을 들여 국내 고교팀 최초로 인조잔디 실내훈련장을 지었고, 3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합숙시설도 뽐낼 만한 시설. 총동창회와 야구동문회, 후원회 등이 매년 내는 지원금 1억원도 인천고 야구를 살찌우는 부분이다.

▲기나긴 세월 속에

역사가 오래된 만큼 특이한 일도 많았다. 일제시대인 36년에는 김선웅 장영식(이상 37년 졸업)이 인천고 대표로, 한국선수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본 고시엔대회에 좌익수로 번갈아 출전했다.

또 '차돌'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김진영은 55년 청룡기에서 세광고와의 1회전이 열리기 전 소독약을 소화제로 잘못 알고 먹은 뒤 병원 응급실로 향했지만, 곧바로 운동장으로 뛰어나와 만루홈런을 쳐내며 1회전 승리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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