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세이] 유격수 박진만 '금값' |
유격수의 역사는 100년을 조금 넘는다. 그전까지 외야수가 4명이었는데, 2루수와 3루수 사이로 안타가 많이 나와 외야수 중 1명이 내야로 투입돼 안타를 막는 수비수인 유격수가 탄생했다. 2루 근처에 있던 2루수는 1·2루 사이로 이동해 요즘과 같은 포메이션이 만들어졌다. 현대 박진만(28)은 현역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는다. 수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몇세대전의 유격수를 연상케한다. 박진만은 지난 25일 대구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유격수의 진가를 똑똑히 증명했다. 7회말 삼성 공격. 2사 2루에서 김한수의 타구가 내야 한가운데를 가르려던 참이었다. 이때 동물적으로 타구를 쫓던 박진만은 2루 뒤에서 '안타'를 기적같이 잡아내며 쓰러졌다. 2루 포스아웃. 선발 배영수의 퍼펙트 피칭으로 기세를 올리던 삼성에 찬물이 끼얹은 장면이었다. 박진만이 예술에 가까운 수비로 팀을 지탱하자 지쳐가던 현대 선수들도 힘을 냈다. 현대가 연장 12회 무승부까지 끌고 간 비결이다. 천재형 선수로 꼽히는 박진만은 부지런한 성격이 못된다. 경기 전에는 뛰는 모습을 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경기 중에서도 느긋하게 잡아 설렁설렁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유격수와 3루수 사이로 빠지는 타구를 박진만이 역동작으로 잡아 송구하면 동료들이 "너, 한발 더 뛰기가 귀찮아서 그런거지?"하고 놀릴 정도다. 웃통을 벗은 그를 보면 운동선수라고 믿기 힘들다. 근육질과는 거리가 먼, 동글동글한 체격이 드러난다. 김재박 감독은 96년 현대 창단 때 고졸 신인이었던 박진만에게 자신이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 7번을 선물하고, 파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를 맡겼다. 그렇게 게으른 천재를 '제2의 김재박'으로 키워냈다. 구단도 박진만을 둘도 없는 보배로 여긴다. 지난해 작고한 정몽헌 구단주가 친자식처럼 예뻐했다. 그 덕분에 주력 선수가 팀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박진만은 창단 멤버로는 처음으로 올시즌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 박진만은 다른 구단에서 수십억원을 쏟아 붓고라도 꼭 영입하고 싶어하는 선수다. 최근 일본 긴테쓰와 오릭스의 합병팀에서도 박진만에 대한 스카우팅리포트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 강명구 구단주대행은 박진만을 불러 "다른 데 갈 수 있으면 가봐라. 어떻게든 다시 잡아올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만큼 그는 현대에서 소중한 존재다. 박진만을 보면 천재 유격수에 대한 가치가 얼마만큼인지 짐작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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