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명품 수비.'
베이징올림픽 결승 쿠바전에서 경기를 끝내는 더블플레이를 완성시키며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준 세계 최고 수준의 키스톤 콤비 삼성 박진만과 두산 고영민이 적으로 만나서는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렸다.
16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삼성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고영민은 매끈한 수비로 내야진을 이끈 반면 준플레이오프의 영웅이자 국민 유격수인 박진만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박진만은 이날 4-6으로 역전을 허용한 7회말 수비에서 고영민의 유격수 앞 느린 땅볼 타구를 낚아채다 놓치고 말았다. 문제는 공을 놓친 자책감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2루주자였던 김현수가 3루를 거쳐 홈까지 쇄도하는 것을 보지 못해 추가점까지 내주고 만 것. 야수들이 모두 홈을 가리키며 "홈, 홈" 소리를 질렀지만 뭔가에 홀린듯 박진만은 얼어붙어 있었다.
올시즌 104경기에 출전해 9개의 실책으로 경기당 0.087개의 실수밖에 하지 않았던 박진만은 일순간에 두 개의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순철 스포츠조선 해설위원은 "제 격에 맞지 않는 박진만의 플레이로 삼성 선수들의 추격 의지가 꺾였다"고 지적했고, KBSN 이효봉 해설위원은 "박진만이 한번에 두 개의 실책을 저지른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수비의 핵이 무너지자 삼성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박진만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고영민으로선 자신의 타구에 존경하는 '선배님'이 망신을 당하는 것을 보며 기분이 더 묘했을 것이다. 고영민은 0-4로 뒤지던 4회초 무사 1루에서 박한이의 안타성 직선 타구를 그림같이 걷어낸 후 더블플레이까지 유도, 삼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만약 여기서 안타를 허용했을 경우 삼성은 두산의 추격권에서 벗어나는 추가점을 내며 경기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경기의 흐름을 두산으로 확 바꿔놓은 결정적인 승부처였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조선이 연재한 명품열전 2편에서 박진만은 고영민의 기민한 풋워크를, 고영민은 박진만의 부드러운 글러브질과 안정된 플레이에 대해 부러움을 나타냈었다. 1차전에선 고영민이 이겼다. 남은 플레이오프에서도 큰 볼거리를 놓치지 않으려면 이들 둘의 글러브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