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찬익 기자] '와이번스의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
SK 와이번스 내야수 박진만(36)이 타석에 들어설때마다 힘찬 응원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1996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박진만은 개인 통산 5차례(2000, 2001, 2004, 2006, 2007년) 유격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김재박 전 LG 감독과 함께 이 부문 최다 기록의 주인공.
2010년까지 삼성에서 뛰었던 박진만은 기회가 점점 줄어들자 구단 측에 보류선수 명단 제외를 요청했다. 그리고 삼성 측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SK 유니폼을 입은 박진만은 자신의 등번호 7번을 달고 고향에서 부활을 꿈꿨다. 자신의 텃밭인 유격수 뿐만 아니라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했다. 자존심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지만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적 첫해 3년 만에 100경기를 소화하면서 타율 2할8푼(282타수 79안타) 6홈런 39타점 42득점으로 녹슬지 않은 활약을 선보였다. 이만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박진만의 입지는 좁아졌다.
3년차 내야수 최윤석은 이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주전 유격수로 뛰었다. 박진만은 올 시즌 1군 무대에 57차례 뛰는데 불과했다. 또 한 번의 시련이 다가오는 듯 했다.
포스트시즌 경험이 풍부한 박진만은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통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 SK 내야진의 '맏형' 박진만은 공수 양면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그가 지키는 비룡 군단의 내야진은 더욱 탄탄해보였다. 공격에서도 박진만의 존재는 단연 돋보였다.
그는 3경기를 통해 타율 5할(8타수 4안타) 1타점 2득점으로 고감도 타격을 과시했다. 특히 28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KS 3차전서 3-6으로 뒤진 4회 삼성의 두 번째 투수 차우찬의 2구째를 때려 좌월 솔로 홈런(비거리 110m)으로 연결시켰다.
이 한 방은 SK의 대역전극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SK는 6회에만 6득점하며 12-8로 전세를 뒤집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빌 샹클리 전 리버풀 감독의 명언처럼 박진만은 여전히 '국민 유격수' 박진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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