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06년

박진만의 그림같은 수비도 '물거품'

사비성 2006. 12. 2. 21:42

박진만의 그림같은 수비도 '물거품'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에 패한 이탈리아 대표팀이 제노아 공항을 통해 몰래 들어오다 분노한 팬들로부터 토마토 세례를 받은 것처럼.

2일 카타르 도하 알라얀구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일본전. 국내 프로리그를 총망라해 대표팀을 꾸린 한국이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주축이 된 일본 아시안 게임 대표팀과 맞붙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듯한 경기.

하지만, 공은 둥글었고 일본 타선은 의외로 막강했다. 한국은 좌완 에이스 류현진(한화)와 이혜천(두산)이 일본의 4번 사이고 야스유키와 2번 요시우라 다카시에게 홈런 2방을 허용하며 7회까지 5-7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특히 7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추가 실점은 사실상 한국의 패배를 굳히는 상황. 마운드엔 벼랑 끝에 선 위기에서 불을 끄기 위해 등판한 '돌부처' 오승환이 있었다.

타석엔 4회 이혜천을 상대로 투런포를 뽑아낸 요시우라 다카시. 요시우라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면 경기는 사실상 끝나는 순간. 요시우라는 오승환의 직구 초구를 노려 쳤다. 2-유간을 통해 중견수 앞으로 빠지는 안타성 타구.

하지만, 유격수 자리엔 최고 유격수 박진만이 있었다. 허리를 굽혀 안타성 타구를 어렵게 건져 낸 박진만은 역모션으로 2루수 정근우에게 토스, 2루에서 포스 아웃을 시키는 데 성공했다.

만약 그 타구가 안타로 처리됐더라면 한국은 일본 아마추어 대표팀에게 수모의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박진만의 그림과 같은 수비가 없었더라면 한국 대표팀은 사회인 야구팀과 대학 선발로 구성된 일본대표팀에 큰 점수 차로 패하는 대망신살을 당하는 결과가 됐을 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을 2번이나 이긴 영광은 잊어야 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박진만은 이은 8회 2사 1,2루 상황에서 깨끗한 중전 적시타를 터트려 3번 이병규의 좌전적시타로 7-7 동점을 만드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펼친 박진만 덕택에 수렁에 빠진 한국 야구의 자존심은 일부분 복구시킬 수 있었지만 9회 말 오승환이 끝내기 3점포를 맞으면서 박진만의 값진 활약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966년 북한에 패한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은 로마의 다빈치 공항을 피해 한적한 제노아 공항을 통해 몰래 들어오다 발각, 성난 이탈리아인들로부터 분노의 토마토 세례를 받은 적이 있다. 한국 대표팀은 인천국제공항이 아닌 다른 한적한 곳으로 숨어 들어와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도하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