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04년

박진만 "김재박 감독님 죄송합니다"

사비성 2004. 11. 24. 16:40
박진만 "김재박 감독님 죄송합니다"
[폭탄뉴스.com 2004-11-24 15:05]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오랫동안 사랑했던 연인을 헤어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성이 FA 심정수 박진만을 싹쓸이하면서 김재박 현대 감독과 유격수 박진만(28)의 애틋한 사제의 정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김 감독은 박진만의 삼성 입단식이 열린 지난 23일 "글마(그 녀석)가 세 번이나 도망가는 것을 내가 잡아서 데려왔는데…"라고 박진만과의 추억 한 자락을 소개했다. 사연은 9년 전인 1995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고 3학년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던 박진만은 부모의 희망에 따라 프로에 직행하지 않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일찌감치 박진만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팀 훈련에 합류시켜 프로 적응 기간을 갖게 했다. 훈련은 힘들고 대학은 가고 싶은 마음에 박진만은 세 번이나 몰래 훈련장을 빠져 나갔고 그 때마다 김 감독은 박진만을 설득시켜 결국 프로 유니폼을 입혔다.

 이후 박진만은 배번도 김 감독의 현역 시절과 같은 7번을 달고 유격수 수비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며 '제2의 김재박'이라는 애칭을 얻어냈다. 박진만이 '4년 간 39억 원'이라는 대박을 터뜨리게 된 데는 이러한 김 감독의 제자 사랑이 숨어 있던 셈이다.

 박진만 역시 삼성 이적에 도장을 찍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바로 김 감독이었다. 그래서 22일 자정을 넘긴 시각에 삼성과 계약을 하자마자 김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죄송합니다"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김 감독은 큰 아쉬움 속에서도 "좋은 조건으로 가게 됐으니 다행이다. 더 열심히 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박진만은 23일 삼성 입단식에서도 "계약을 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9년 동안 나를 키워준 현대와 감독님의 곁을 떠난다는 아쉬움이 생각보다 너무 크게 느껴진다. 계약을 한 뒤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