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드 파크 골든글러브 수상의 역사
활약팀 따로 수상팀 따로 이적생들 소속이 애매해요
[제1231호] 2015.12.15 10:00
# 어떻게 뽑나
골든글러브 수상자에게는 말 그대로 커다란 황금색 글러브가 주어진다. 안타깝게도 순금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금칠이 돼 있는 글러브다. 원 소재가 가죽이라 실제 경기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는 선수는 없다. 금칠이 된 가죽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메이저리그나 일본처럼 수비율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결정했다. 그러나 1983년부터는 공격과 수비를 아우르는 포지션별 최고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탔다. ‘수비율’이라는 척도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1984년부터 지명타자 부문이 신설됐고, 1986년부터 외야수 부문을 좌·중·우익수를 가리지 않고 통합해 투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프로야구 기자단과 방송 관계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해 ‘야구선수로서의 종합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정한다.
사실 포지션별로 확고하게 굳어진 선정 기준이 없고 매년 달라지기 때문에 종종 후보 선정과 수상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올해만 해도 18승을 올린 두산 투수 유희관(방어율 3.94)이 ‘방어율 3.50 이하이면서 15승 이상이거나 30세이브 이상을 올린 투수’라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역대 3번째로 포수 전 경기 출장을 달성한 NC 김태군은 더 놀랍게도 ‘타율 3할 이상’이라는 기준에 미달해 후보에서 누락됐다. 또 2012년에는 지명타자 출전(50경기)보다 1루수 출전(80경기)이 더 많았던 이승엽이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을 수상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듬해인 2013년부터 ‘출전 포지션 중 지명타자 출전 경기수가 최다인 경우’라는 조항이 신설된 이유이기도 하다.
# 다양한 기록 잔치
골든글러브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서도 삼성 이승엽은 홈런뿐만 아니라 골든글러브에서도 새 역사를 여럿 남긴 주인공이다. 올해도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손에 넣으면서 개인 통산 10번째 수상 고지를 밟아 역대 최초로 두 자릿수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됐다. 이승엽은 지난해 이미 9번째 골든글러브로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경신했고, 올해 만 39세 3개월 20일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수상 기록도 갈아 치웠다. 이승엽은 1루수 부문에서 7번, 지명타자 부문에서 3번을 탔는데, 특히 1루수 골든글러브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간 연속으로 수상해 최다 연속 수상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각 포지션별 최다 수상자는 투수 부문 선동열이 6회, 포수 부문 김동수가 7회, 1루수 부문 이승엽이 7회, 2루수 부문 박정태가 5회, 3루수 부문 한대화가 8회, 유격수 부문 김재박과 박진만이 5회, 외야수 부문 LG 이병규(9번)가 6회, 지명타자 부문 김기태, 양준혁, 두산 홍성흔이 각각 4회 수상으로 집계돼 있다.
그런가 하면 양준혁과 장종훈은 나란히 3개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해 최다 부문 수상 기록을 갖고 있다. 양준혁은 지명타자 4회, 외야수 3회, 1루수 1회, 그리고 장종훈(5회 수상)은 1루수 2회, 유격수 2회, 지명타자 1회를 각각 수상했다. 이승엽과 반대로 역대 최연소로 골든글러브를 탄 선수는 김재현이다. 1994년 고졸 신인으로 LG에 입단해 만 19세 2개월 9일의 나이로 외야수 부문 황금장갑을 꼈다. 김재현 외에 고졸 신인이 입단 첫 해에 골든글러브를 탄 사례는 1992년 롯데 염종석(투수 부문)과 2006년 한화 류현진(투수 부문)뿐이다.
지금까지 골든글러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던 선수는 NC 이종욱이다. 두산 시절인 2007년에 외야수 부문에서 총 유효투표수 397표 가운데 88.2%에 해당하는 350표를 얻었다. 외야수 부문은 총 3명까지 투표할 수 있는 특성상 그해 최다 득표 선수를 가장 자주 배출하온 포지션이지만, 그 점을 고려한다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올해 최다 득표선수인 김현수는 점유율(88.5%)에서 이종욱을 앞섰지만, 총 358표 가운데 317표를 얻어 득표수에서 밀렸다. 참고로 역대 최다 득표율 수상자는 2002년 지명타자 부문의 삼성 마해영이다. 272표 가운데 단 2명을 제외한 270명이 마해영을 찍어 무려 99.26%의 득표율을 자랑했다.
물론 실제로 2명의 유권자가 골든글러브 수상자와 탈락자를 결정짓기도 한다. 1993년 삼미 정구선은 2루수 부문에서 29표를 얻어 2위 MBC 김인식을 2표차로 눌렀다. 1994년 포수 부문 수상자인 LG 김동수(101표), 2001년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인 삼성 양준혁(104표), 2010년 포수 부문 수상자인 LG 조인성(167표)도 그랬다. 당시 2위였던 태평양 김동기(99표), 롯데 펠릭스 호세(102표), SK 박경완(165표)은 각각 딱 2표가 모자라 역대 가장 아쉬운 탈락자로 남게 됐다. 넥센 이택근은 현대 시절이던 2007년 외야수 부문에서 189표를 얻고도 3위인 LG 이대형(208표)보다 적은 득표로 4위에 그쳐 역대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상을 받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또 2004년에는 외야수 부문 투표에서 삼성 박한이와 LG 이병규가 나란히 138표로 공동 3위에 올라 역대 최초로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4명이 수상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정규시즌 5연패 팀인 삼성은 지금까지 총 64명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해 역대 최다 수상팀으로 남아 있다. 삼성은 올해도 전 포지션에 소속 선수를 골든글러브 후보로 올려놓는 기록을 남길 뻔했지만, 3루수 부문 후보 박석민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고 NC로 이적하면서 10개 부문 후보를 내놓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해태는 1991년에 무려 6명의 수상자(투수 선동열, 포수 장채근, 1루수 김성한, 3루수 한대화, 외야수 이순철과 이호성)를 내놓아 역대 한 팀 최다 수상과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 최다 수상 기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 ‘이적생 FA’가 낳은 진풍경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2007년 역대 최다 득표인 350표를 얻은 이종욱, 2002년 최고 득표율 99.26%를 얻은 마해영, 2004년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된 직후 수상한 박진만(왼쪽부터).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사실 박석민을 NC로 보낸 삼성의 사례에서 보듯,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가장 애매한 부분은 소속팀 표기다. 시상식이 FA 국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 열리기 때문이다. 선수가 한 시즌 동안 몸을 담고 활약한 팀은 따로 있는데, 시즌 후 FA나 트레이드 등을 통해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면 종종 어색한 장면이 연출된다. 역대 최초의 사례는 1993년 김광림과 한대화였다. 당시 OB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김광림은 시즌 후인 11월 23일 쌍방울로 트레이드됐고, 12월 4일에는 해태의 간판타자였던 한대화가 LG로 트레이드됐다.
그리고 그해 12월 11일에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김광림은 외야수 부문 2위로 생애 첫 황금장갑을 획득했고, 한대화는 7년 연속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김광림의 소속팀은 OB가 아닌 쌍방울, 한대화의 소속팀은 해태가 아닌 LG였다. 당시에는 이런 전례가 없었기에 소속팀에 대한 유권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골든글러브 수상자 배출은 선수 개인뿐만 아니라 팀에게도 의미 있는 기록이었기에 더 그랬다. 결국 팀을 옮긴 선수의 이름 앞에 다시 전 소속팀명을 표기하는 게 더 이상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후 1999년 LG 포수 김동수가 시즌 직후 FA로 삼성으로 이적해 황금장갑을 탔고, 2004년 현대에서 뛴 박진만도 FA로 삼성으로 이적한 뒤 골든글러브를 안았다. 하필이면 당시 현대 감독이자 박진만을 애지중지 키운 김재박 감독이 유격수 부문 시상자였다. 김 감독은 어색하게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이라고 호명한 뒤 무대에 오른 박진만에게 상을 주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해 시상식장에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이 외에도 2008년 지명타자 홍성흔이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하자마자 골든글러브를 받았고, 2013년 2루수 정근우도 SK에서 한화로 옮긴 직후 황금장갑을 수상했다. 올해 넥센에서 활약한 유한준은 FA 자격을 얻어 고향팀 kt로 이적하면서 신생구단 kt 창단 직후 최초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박석민 역시 지난해에는 삼성 선수로, 올해는 NC 선수로 각각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kt와 NC는 KBO에서 제작한 골든글러브 안내 책자에 나란히 새 유니폼을 입은 두 선수의 합성 사진을 수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올해 정규시즌과 국제대회 일정상 FA 계약 시기가 뒤로 밀리면서 미처 새 프로필 촬영을 할 시간이 없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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