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 성적, 유격수에게 물어봐
타구 가장 많이 처리하는 수비 핵… 결정적인 수비가 경기 결과 좌우
유격수를 흔히 야전사령관이라고 한다. 그만큼 수비의 ‘핵’이다. 오른손 타자가 대부분이기에 내야수 중 가장 많은 타구를 처리한다. 공이 외야로 넘어가더라도 중간에서 공을 커트해 어느 쪽으로 공을 던져야 할지 결정하는 선수도 바로 유격수다. 몸이 민첩하고 어깨가 빠른 선수가 이 자리를 주로 맡는다. 따라서 프로야구에선 유격수의 수비 능력으로 경기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포스트시즌과 같은 큰 경기에서 유격수의 실책은 치명적이다.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선 유격수 수비가 경기를 좌지우지했다. 넥센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는 당시 접전을 펼쳤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SK는 4-4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11회말 2사 만루에서 박정배가 넥센 윤석민을 평범한 내야 뜬공으로 유도했다. 모두가 이닝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유격수 김성현이 그 공을 못 잡았다. 상대팀 넥센도 예상하지 못했던 끝내기 실책이었다. 그 실책 하나로 SK는 1년 동안 쌓았던 공든탑이 무너졌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김성현은 결국 유격수 자리를 버리고 올해부터 2루수로 변신하는 아픔을 겪었다.
역대 프로야구에선 유격수가 강한 팀이 가을야구에 강했다. 유격수가 강하다는 말은 내야 범실이 적다는 뜻이다. 탄탄한 수비가 뒷받침되면 투수는 마음 놓고 공을 던질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초창기를 호령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1997년 모기업이 외환위기로 타격을 받으며 쇠락의 길을 겪었다. 이 때 나타난 선수가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었다. 이종범은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팀에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겨줬다. 공격도 좋았지만 수비에서도 빠른 발을 이용해 깊숙한 타구를 잘 처리했다. 2009년 KIA 시절에는 후배들의 수비에 아낌없는 조언으로 팀의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춧돌을 놓기도 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프로야구를 평정했던 현대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4회 우승도 유격수 박진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 박진만은 빠른 예측 능력으로 어려운 타구도 쉽게 잡아냈다. 국제 대회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특히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쿠바와의 결승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다. 3-2로 앞선 9회말 1사 만루 위기에서 박진만은 어려운 타구를 잡아 병살타로 연결시켜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줬다. 이후 그는 ‘국민 유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5년까지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를 일군 삼성 라이온즈도 김상수라는 유격수가 든든히 내야를 지켰다. 현역시절 명유격수였던 류중일 감독은 김상수에 대해 “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유격수다. 대체불가 선수”라고 못을 박는 등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줬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도 유격수 김재호가 버티고 있다. 김재호는 올 시즌 800이닝 이상 수비를 소화한 유격수 중 가장 작은 10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2연패를 노리고 있다.
올 시즌 포스트시즌에서도 유격수 수비 능력에 결과가 좌우되고 있다.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선 4회초 LG 유격수 오지환의 실책이 승부를 갈랐다. 이 실책 때문에 LG는 KIA보다 1개 많은 6개의 안타를 치고도 2대 4로 패배했다. KIA 김기태 감독조차 “우리가 운이 좋았다”고 했다. 경기 후 KIA팬들은 잠실구장 주변에서 ‘오지환’을 연호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KIA도 안심할 처지는 못 됐다. KIA도 유격수가 취약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정규시즌 중에는 강한울과 박찬호가 번갈아 출장했지만 김 감독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이에 김 감독은 포스트시즌에 지난 달 군에서 제대한 김선빈을 내세웠다. 김선빈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병살타를 두 개나 처리하며 선발 헥터 노에시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하지만 김선빈도 뜬공 트라우마가 있다. 1차전에서 김선빈은 4-0으로 앞선 8회말 무사 1루에서 이병규의 평범한 뜬공을 놓쳤다. 이로 인해 쉽게 갈 수 있는 경기를 어렵게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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